자치분권위원회

전문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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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분권은 균형발전과 국가성장을 보장해야 한다.

작성자
관리자
게시일
2021.05.21
조회수
2,188
이민원
광주대학교 교수
(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지방분권 요구가 분출하던 2000년대 초반, 호남의 여론은 지방분권에 회의적이었다. 당시 광주의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 불려 나간 기억이 생생하다. 경제력이 취약한 호남에게 지방분권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우려의 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호남의 발전에 기여함을 증명하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려야 했다.


  호남은 균형발전의 공간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누는 관행도 싫어했다. 전국의 지방분권운동가들이 모인 ‘지방분권국민운동’이라는 조직의 회의에서 호남 측 인사들은 영호남 격차가 여전한 상태에서 격차 해소의 대상이 영남에서 수도권으로 점프하는 데 대해 쉽사리 동의하지 않았다. 회의 도중에 책상을 두드리며 고성이 오가는 심각한 의견충돌이 비일비재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균형발전 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다. 수도권 중심론자들 뿐만 아니라 지방분권운동가들조차도 균형발전 자체를 시큰둥하게 여기기도 하고, 행정수도나 혁신도시를 통한 균형발전 효과를 불신하기도 한다. 성장 혹은 자치분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본 결과다.


  다시 20년 전 지방분권운동 회의실로 돌아가 보자. 지금 자치분권을 설파하는 분들은 과거 20년 전 호남인들이 느꼈을 그 심각한 불안과 불만, 혹은 균형발전에 대한 욕구를 경시해도 될까. 지금 균형발전을 외치는 분들은 지역의 자립적 발전 효과를 무시하고 정부 역할만 강조해도 될까. 또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만 이루어지면 경제가 퇴보하여도 괜찮은가. 지금도 성장만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그 성장이 지방소멸의 대가여도 상관없는가. 이 문제의식을 공자와 칸트의 표현을 흉내 내 정리해보자. 


  첫째, 균형발전 없는 자치분권은 허망하고 자치분권 없는 균형발전은 위험하다: 자치분권이 균형발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균형발전이 자치분권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면 중앙정부에 운명을 맡긴 지방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둘째, 국가성장 없는 균형발전은 허망하고 균형발전 없는 국가성장은 위험하다: 균형발전이 국가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면 균형발전은 도대체 왜 해야 하나. 국가의 성장이 지방소멸 위에 이루어진다면 그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셋째, 지방재정 확충 없는 자치분권은 허망하고 자치분권 없는 지방재정확충은 위험하다: 자치분권이 아무리 완벽한들 지방재정이 허약하면 무슨 수로 지역발전을 꾀하며, 지방재정이 아무리 튼튼한들 자치분권이 없으면 지역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앙정부에 의해 재단되는데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결국 이 시대의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그리고 국가성장과 관련하여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같이 중시하며 국가성장을 가져올 조건은 무엇인가’이다. 이 숙제의 발단은 우리나라의 지역 간 격차가 크다는 데 있다. 이 큰 격차는 중앙정부의 불균형투자와 지방의 자치력 미비가 그 원인이다. 그러니 국가는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 즉 균형발전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지방의 자치력 미비는 경영 능력 부족으로 이어져 지역의 퇴보를 가져오니 강력한 지방분권을 통한 자치력 제고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천명하고 있는 주민자치 중심의 자치분권2.0은 완벽한 자치분권을 지향해야 한다. 과연 지방자치의 주체가 주민이 되면 자치분권은 완벽해지는가. 혹시 주민자치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주민자치로 현재의 자치분권의 어느 부분을 개선하려는지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주민자치로 지방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메커니즘을 찾아내야 한다. 


  다음으로 자치분권이 균형발전과 국가성장을 가져올 조건을 찾아야 한다. 자치분권은 지역에서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투자처를 찾아 집행할만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지역 내에 거버넌스가 강력하여 지역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결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결정을 집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국세의 지방세 이양을 증가시키되 지역의 사정에 따라 이양 세목을 달리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그리고 국가성장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자치분권은 균형발전과 국가성장을 보장하는 의미에서만 그 존재가치가 있다. 균형발전은 자치분권의 기반 위에 국가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국가성장은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버리고 홀로 가서는 안 된다. 현재의 자치분권 제도를 실천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명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