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분권위원회

전문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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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경찰제 시대의 개막

작성자
관리자
게시일
2021.06.04
조회수
2,609
황의갑
경기대학교 공공안전학부 교수

  지난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부터 자치분권의 숙원으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오던 자치경찰제 도입을 위한 경찰법 전부개정안이 참으로 긴 여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는 관련 조례제정을 마치고 자치경찰위원회 구성을 완료해 가는 등 오는 7월 자치경찰제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다. 


  경찰인력과 사무의 40% 상당을 광역지자체 산하의 자치경찰로 이관하여 국가경찰과 분리하는 이원화 모델로 추진되어 오다가, 업무혼선으로 인한 치안불안과 소요비용 과다 등 시행착오 가능성에 대한 막바지 고민 속에서 국가경찰의 조직체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생활안전, 교통, 지역행사경비 및 이와 밀접한 수사 등 민생업무를 자치경찰사무로 분류하여 시·도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하는 일원화 모델로 입법화되었다.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을 표방한 정부에서 일원화 모델을 내세우느냐는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있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자치경찰을 현실화하고자 진행해온 그동안의 긴 논의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자체, 경찰청, 국회, 학계 등 관련당사자들의 다양한 의견 속에서 참으로 어렵고도 지난한 논의를 거쳐 이상론에 머무르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자치경찰제로 시작해보자는 의지가 강했기에 그나마 출발점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지방자치제도가 1991년 지방의회 부활당시의 여러 반대와 염려에도 불구하고 30여년 시간의 터널을 거쳐 완결성을 향해 번듯하게 정착되어온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금번 자치경찰제의 개막도 자치분권과 치안제도의 발전에 있어서 후대에는 괄목할만한 성과로 기억될 것이다. 


  개막을 앞둔 우리의 자치경찰제 모델의 현주소를 비교론적 관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학계에서는 각국의 경찰제도를 분권화 정도를 기준으로 집권형(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분권형(미국, 캐나다, 독일 등), 절충형(일본, 영국 등) 제도로 구분한다. 기초단위냐 광역단위냐를 기준으로 보자면, 미국은 18,000개 이상의 경찰이 법집행에 대한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기초단위 자치경찰제도의 전형을 보이는 반면에 영국이나 일본은 기초단위에서 시작했다가 사회의 다원화로 치안의 효율성과 분권성의 조화가 필요함에 따라 광역단위 자치경찰제도로 정착되었다. 아울러 프랑스는 군경찰과 국가경찰의 집권화된 경찰제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중앙에서 헤아리기 어려운 지역의 치안업무를 해소하고자 기초자치단체장이 소수의 자치경찰을 채용하여 제한적이나마 지역치안 사무를 다루면서 기초단위 자치경찰제도가 형성되었다.


  이렇듯 각국의 자치경찰의 모습은 그 나라의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발전되어온 제도이다. 조직구조는 집권적이면서도 사무는 국가경찰사무와 자치경찰사무로 나누어 절충적 지휘감독체계를 갖추게 된 우리의 일원적 자치경찰모형은 효율적인 국가경찰체제의 오랜 역사를 함께해온 시민과 경찰 모두에게 치안누수와 신분불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코로나로 어려운 시국에 국가예산을 투여하여야 하는 부담 없이 지역밀착형 자치치안을 시행해볼 수 있는 한국형 자치경찰 모델이라 생각된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단체장의 자치치안에 대한 비전 제시와 실현을 가능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개막이후 자치경찰의 역할에 따라 경찰권 전반의 광역단위 분권화도 꿈꿔볼 수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자치경찰제도의 개막을 계기로 과거 새마을운동 이상의 지역사회 체질을 바꾸는 지역사회 부흥을 치안 패러다임 전환의 비전으로 제시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하는 범죄학 및 경찰학자로서의 바람이 있다. 범죄학에서는 지역사회 집합효율성이라고 하는 주민들 간 유대감과 비공식사회통제 능력을 되살리는 것이 지역사회 부흥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나아가야할 정책적 견지이며 이를 지역사회경찰활동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아파트 문화의 확산 속에 매몰된 전통사회의 유대감과 공동체의식을 되살리는 지역사회경찰 중심의 근린자치 활성화가 자치경찰제 개막을 계기로 지방행정과 치안행정의 연계를 통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기를 바란다. 경찰의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확대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에 지역사회를 부흥시키자는 치안에 대한 비전과 그에 걸맞는 업무역할과 평가체계가 갖추어 진다면 경찰관들 또한 새로운 지역밀착형 치안활동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직무만족도가 향상된다는 해외의 연구결과가 많다. 명실상부 ‘지역과 시민 속으로’라는 혁신을 통해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지자체와 자치경찰이 공동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자치경찰제가 갖는 장점일 것이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엘리노 오스트롬 교수는 적응형 거버넌스(Adaptive Governance) 이론을 기반으로 경찰서비스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10여년에 걸쳐 실시하면서 중앙집권적 단일중심체제, 즉 국가경찰체제가 다중심체제, 즉 자치경찰체제보다 효율적이라는 통념의 위험성을 지적한바 있다. 오스트롬 교수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그동안 다중심체제보다 단일중심체제가 더 효율적이라는 사례를 단 한건도 발견한 바 없다며 다중심적 자치분권의 민주적 효율성 기제로 지자체 간 경쟁을 통한 발전, 창의적 아이디어 개발, 공공혁신가 정신, 치안 공동생산의 가능성, 그리고 유사한 치안 업무를 서로 다른 지자체에서 동시에 진행하면서 배우고 발전해갈 수 있다는 가외성의 가치를 설명한 바 있다. 


  자치경찰제의 길은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오스트롬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지역밀착형 경찰활동은 물론 치안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자치경찰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