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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는 팬데믹 현상(Pandemic situation)을 선언하였고, 모든 세계인이 코로나19 확산경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많은 나라에서 국경을 폐쇄하고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면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인류문명의 새로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관심이 크면 통상 총체적 대응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즉, 이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중앙정부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거나, 세계화에 반하는 국가 단위의 안전장치가 국제교역에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확산사례를 보면 몇 가지 특이사항이 발견된다. 즉, 코로나19는 첫째,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도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공간쏠림현상을 보여주고 있고, 둘째, 나라의 의료체계, 의료진의 충원과정에 따라 국가별로 각기 다른 감염특성을 보여주며, 셋째, 생활문화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된 현장특성을 나타냈다.
이러한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하여 두 번째의 특이사항은 매우 복합적이라서 의료진의 양성과정, 병의원의 질과 공간분포,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접근성, 의료보험체계와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과제들은 국가운영체계와도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흔히 두 번째 특이사항을 근거로 향후 감염병 예방 및 관리를 위해서 국가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특이 사항 자체가 국가의 역할증대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재이유를 새삼 확인하는 준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는 이미 그러한 이유 때문에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일을 위해 존재해야할 당위성을 인정받는다.
위의 첫째와 셋째의 특이사항은 철저하게 향후 감염병 예방 및 관리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증대는 자치분권을 통해 가능하다. 현장의 문제는 현장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생활방식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국지적인 것은 부분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접근해야지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접근하다보면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정부대응은 향후 나라운용과 관련하여 몇 가지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 첫째는 우리나라 감염병 예방 및 관리와 관련한 제도가 매우 복잡한 거버넌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현장감 있는 거버넌스가 활용되기 어렵다.
둘째는 중앙정부가 전국을 획일적으로 관리하다보니 현장 중심의 처방이 어렵고, 자원의 낭비가 불가피하였다. 또한 전체를 획일적으로 관리하면 항상 부분적으로 상대적 불평등을 초래한다.
셋째는 관리자 위주의 위계적이고 집권적인 통제로 감염병에 대응하다보니 현장 행위자인 주민들의 능동적인 대응을 촉발하는데 한계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감염병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상이라서 이의 처방 역시 정치가나 행정관료 중심이 아닌 전문가 중심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따라서 세계적 유행병에 대한 효과적 대응도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에 근거하여 현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챙길 수 있는 지방정부 중심으로, 그리고 현장에서 생활하는 주민 중심으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감염병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예방 및 관리하기 위해서는 자치분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의 장점은 무엇보다 ‘거버넌스(협치)’의 효력을 통해 나타난다. 거버넌스는 정부 일방적인 통치방식과 대조적인 공공재 및 공공서비스 생산, 전달방식이다. 공익관리방식에서 ‘통치’는 일반적으로 집중된 권력을 계층적으로 사용하고, ‘지시와 통제’로 특징져진다.
반면 거버넌스는 모든 이해당사자를 연계하고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공동으로 공공재를 정의하고 생산, 공급하는 방식으로 특징지어진다. 또한 ‘통치’는 공공재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버넌스는 공공재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통합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거버넌스 체제에서 주민은 공공재의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공공재를 정의하고 생산, 공급하는 ‘공동 생산자’이다.
의사결정방식에 있어서 통치는 다수결에 의한 지시와 통제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거버넌스는 구성원들의 역할분담과 결과의 공유에 의한 협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거버넌스’체제는 내부자원과 외부지원을 결합하여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려할 것이고, ‘통치’체제는 외부자원 투입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른 한편 추진조직에서 정부 주도의 ‘통치’체제는 집중된 형태로, 거버넌스는 분산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통치는 국가형성에, 거버넌스는 시민사회 구축에 조직의 공동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건전한 시민사회는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을 보충하는 또 다른 제3의 기제(機制)다. 결국 건전한 시민사회는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익증진을 통한 주민 모두의 복리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한 시민사회는 정부의 역할과 대조하여 확인될 수 있고, 정책형성이나 계획수립에 있어서 상향적 방식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따라서 ‘통치로부터 거버넌스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제까지 정부가 맡아 해오던 일 중에서 민간부문이 정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공공재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한 공공부문 실패는 작은 정부로도 교정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경우 지방정부끼리의 수평적 협력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번 코로나19 관리과정에서 보여준 우리나라 주민들의 시민정신은 자치분권을 통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종코로나 감염병 확산과 같이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현장 중심의 특성을 보여주는 재난에 대한 공공대처는 국가 전체를 하나의 통으로 관리하는 것보다 전국을 작은 단위의 자치공간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것이 국가의 안정화에도 효과적이다. 부분적인 구성요소를 합하여 전체를 만드는 과정이 가장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하지만 전체를 쪼개서 부분을 만들기는 어렵기도 하고, 쪼개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은 늘어난다. 따라서 자치분권적 접근이 감염병 확산을 차단하고, 주민들이 정부에 끌려가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활방식에서 대응할 수 있는 시민정신을 키워갈 것이다.
결국 지방정부와 주민들에게 주도권과 주인의식을 돌려준다면 국지적인 현장 중심의 어떠한 환란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게 된다. 이것이 자치분권을 통한 지역사회 회복력 효과다.
이러한 맥락에서 향후 감염병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대처방안은 중앙정부 주도의 수직적인 통제와 관리가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연계적 역할분담과 함께 지방정부끼리의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거버넌스를 통해 접근되어야 한다.
즉, 중앙정부는 감염병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국경을 관리하고 입국자에 대한 조치와 관련하여 지방정부와의 역할분담에 해당하는 연계적 거버넌스를 구축하여야 하고, 지방정부는 관할 구역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시민정신을 활용하고 인접 지방정부와의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거버넌스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여야 한다.
중앙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면 일부의 실패도 국가의 책임으로 남지만, 지방정부가 각자의 관할구역 주민들의 안전을 우선 챙긴다면 간혹 일부 지역에서 문제가 심각해도 전체의 국가 ‘틀’은 유지될 수 있다. 이 경우 일부지역의 심각한 위험은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보충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모두를 다루면서 실패할 경우 일부 지역에서의 극히 심각한 상황을 보충할 중앙정부의 여력도 없게 된다. 따라서 지방자치는 곧 국가체제의 안전장치에 해당한다. 자치분권이 정치적으로 필요하고, 경제적으로도 타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