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분권위원회

전문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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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한 행정의 역할

작성자
관리자
게시일
2019.12.06
조회수
3,310
노계향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전문위원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국정과제인 자치분권 실현을 추진하는 자문위원회로서 자치분권 총괄 조정 기구이다. 위원회는 중앙에서 설계된 제도와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를 다시 제도와 정책에 반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많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지역주민들이 자치를 해야 하는데 행정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라든가, 또한 모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또한 주민들은 행정이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다거나 말이 통하지 않고 원론만 되풀이하는데 공무원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이러한 상반된 이야기를 들으며 양쪽 모두에게 다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왜일까? 그 시작점은 우리나라의 주민자치가 다른 나라와 다르게  ‘사업’에 자꾸 초점이 맞추어지다보니 행정과 주민이 사업으로 맞부딪혀가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효율성과가 필요한 행정, 더디지만 방향이 중요한 주민. 서로의 다른 시간과 서로의 다른 언어가 ‘사업’이라는 좌표에서 만나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이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현장 사례를 통해 행정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역할을 했을 때 주민자치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마을공동체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젊은 엄마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전체 문화를 바꾸고 있으며, 5회 차 마을축제가 지난 2019년 10월 12일에 있었다. 이곳 마을축제는 마을주민들이 주인공이 되어 정말 재미있게 운영이 된다.


  처음 축제 때에는 이름만 불러도 울던 초등학생 아이가 지난해 4회째는 고등학생이 되어 무대에 섰다. 할머니가 주축이 된 백세발레단도 무척 감동이었는데 동네 할머니들께 제일 해보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하얀 발레옷을 입고 발레슈즈를 신어보고 싶다 하셨다는 거였다. 


  그래서 백세발레단이 만들어졌고 젊은 엄마들이 할머니들이 가능한 수준의 발레를 가르쳤다. 토우슈즈에 발레옷을 입고 상기된 할머니들의 수줍은 얼굴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이렇게 자체적으로 거의 모든 주민들이 참여하는 흥겨운 축제가 올해는 여러 진통을 겪었다. 그 진통의 시발점은 행정 개입이었다. 


  축제가 소문이 나면서 이전엔 보조금을 주면서도 관여하지 않던 구청이 개입하였다. 물론 더 크고 더 좋은 축제를 만들어보려고 한 ‘선의’였다. 일단 규모를 키우겠다고 이웃동네 축제와 통합하였고 두 동네 축제담당 주민들이 만났다. 


  이웃동네는 행정이 준비해 주는 축제를 해온 곳으로 축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형식적인 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정 쪽에서 자꾸 행정에 맞추는 주문을 하게 되면서 축제 날짜부터 구청장 일정에 맞추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구청장을 비롯한 내외빈이 다 참석한 시간에 형식에 맞게 개회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웃동네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전혀 반발하지 않았지만 이제껏 모든 주민이 주인공이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놀고 웃고 왁자지껄한 축제를 치러온 이 마을은 이러한 축제를 수용하기가 힘들었다.


  벼륙시장(프리마켓)조차도 주민들이 아닌 전문프리마켓을 들여오자는 행정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단지 우후죽순 설치되는 부스보다 일률적으로 늘어선 부스가 보기 좋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들의 축제를 지키기 위한 싸움과 양보로 올해 축제는 힘든 과정 속에 치러졌다. 이 마을은 내년도에 행정이 이렇게 개입을 한다면 보조금 없이 자체적으로 축제를 치루겠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사례를 살펴보면, 앞의 마을처럼 활발한 마을공동체는 아니지만 평균연령이 70대임에도 꾸준히 마을환경을 바꾸어가는 농어촌마을로, 꽃 관련 축제를 4년째 진행해 오고 있는 곳이다. 


  주민들끼리 첫 축제를 치루고 이후 지역공동체 공모사업으로 약간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올해도 공모사업에 선정이 되었다. 축제는 무사히 잘 치러졌고 한 통신사가 제공하는 지도정보서비스인 티맵(T map)에 꽃축제 주차장이 등록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왔다. 


  문제는 공모사업 사업비 지급시기이다. 축제는 4월에 하는데 사업비는 7월에야 나왔다. 꽃축제로 사업에 선정되었으니 사업비가 나오면 소급적용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도 들었지만 막상 사업비가 나오고 나니 소급적용은 안된다고 하였다.


  행정 쪽에서는 사업계획서를 수정해서 다시 제출하라 하였고, 마을이장은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사업비를 반환할 생각을 하고 있다. 공모사업은 꽃축제로 선정되었는데 선정된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을 또 만들라고 하였다.  


  행정에서는 물론 사업비가 늦게 지급된 여러 사유를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장은 작년부터 사업 공모시기를 년 초로 당겨주던가 아니면 사업비가 지급될 시기를 알려주고 그 이후에 실행 가능한 사업만 제출하게 하던가 조정을 해주어야할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사업마감과 회계정산은 행정 시간에 맞추면서 행정은 선정된 공모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맞느냐고 되묻기도 한다. 


  세 번째 사례를 보면, 경기도의 한 마을에서 주민자치를 활성화시키고 싶었던 행정이 주민들에게 무엇이든 마을을 위한 계획을 세워오면 실행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지역주민들은 몇 달에 걸쳐 마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논의하고 마을카페를 만들기로 계획을 세웠다. 계획서를 가지고 행정을 만나러 간 주민들에게 돌아온 답은 “그 마을은 상수원보호지역이라 카페를 만들 수 없다.”였다. 


  관련법에 근거한 당연한 답이었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열심히 계획을 세웠던 주민들은 행정이 자신들을 농락했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서로 간에 잘 해 보고자 했던 일이 결국 불신만 남기게 되었다.


  첫 번째 마을처럼 주민들 힘으로 활발하게 돌아가는 곳이라면 행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지역주민들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행정에 지원을 요청할 때, 그 때 행정이 원하는 부분만 도와드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도울 수 없는 부분이라면 왜 도울 수 없는지 설명하고 주민들이 해결할 방안을 강구하게 하면 된다. 사실 주민자치는 행정에서 가장 원하는 매번 말하는 행정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성과있게 해주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지원 그것도 주민들이 원할 때 해 주시는 것이 좋고 이런 마을들이 전국에 많이 생겨나야 한다. 


  두 번째 사례는 아마도 가장 많은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을공동체가 활발해지고 주민자치에 대한 인식이 늘어나면서 자체적으로 공모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마을들이나, 자립을 원하지만 아직은 공모사업을 통한 사업비가 필요한 마을들의 경우, 행정은 행정적 절차에 마을이 따라오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선정된 공모사업이 제대로 잘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매해 반복되어 수정이 요구되는 사항이라면 그리고 그 사항이 행정적 절차에 대한 부분이라면 충분히 검토하여 행정적 절차의 불합리로 인해 주민의 의지가 좌절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행정의 당연한 역할일 것이다.


  세 번째 사례는 이제 막 공동체 활동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 마을의 경우, 행정이 ‘너희끼리 알아서 만들어 와’라고 하지 않고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논의 과정에서 그건 법적으로 또는 행정적으로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법과 제도를 잘 아는 행정의 무기를 주민들과 함께 나누면서 상호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여러 다른 결과를 만들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사례에 비추어 단계별 행정의 역할을 정리해 볼 수 있다. 공통의 역할은 당연히 제도적 기반마련이다.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1단계 초기 시작단계의 마을은 ‘지원’의 개념보다는 ‘협치’라는 생각의 동반자 역할을 한다. 


  2단계 중기 활성화 단계의 마을, 다시 말해 공모사업을 수행할 정도의 역량이 되면서 마을공동체를 유지해 가는 마을은 마련된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지속적 정비를 통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 역할이 필요하다.


  3단계 자립단계 마을, 즉 공모사업 여부와 상관없이 마을공동체가 정착되고 활발히 움직이는 마을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항에 대한 지원 역할로 주민의지에 반하는 개입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치회가 활발하다는 일본의 요꼬하마시. 그 시작은 공무원들이 각자 지역을 나누어 돌며 각 지역에 필요한 의제를 발굴한다. 그 결과, 28개 의제가 발굴되었고 주민들에게 발굴된 의제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혹시 이 문제를 해결해 보실 주민이 있으신가요? 하고 물었다. 이 중 5개 의제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해결해 보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자기 지역에 그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서 나선 주민도 있고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발표를 통해 알게 된 주민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다수 주민이 지역의 자치회, 또는 일본 지역주민의 자치적 친목조직인 정내회에 가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