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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또는 시장의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중재 역할을 약화시키고, 국가라는 보호막 없이 지방이 그대로 세계경제에 노출되고 대응해야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지방화(localization) 노력은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지방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조절능력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세계화에 동반되는 국민국가의 상대적 중요성의 약화와 지방화는 국민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으로서 ‘주권’(sovereignty)의 행사방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시사한다. 현대국가 민주주의의 핵심전제인 국민주권은 국민이라는 추상적인 집합체에 주어진 참정권에 국한된 형식적 권력을 의미할 뿐, 정작 실질적 권력은 선거를 통해 의사결정권을 위임받은 대의정부, 중앙정부가 가지게 된다. 즉, 국민주권이라는 허울아래 실제 주권은 중앙정부의 선출직 정치인들이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지방화는 생활세계의 발견뿐만 아니라 지방이라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주체로서 ‘주민’의 등장에 주목하게 한다. 지방화에 따른 지방자치의 핵심원리로 강조되는 것이 ‘지방민주주의’다. 지방민주주의는 지방정부와 주민과의 관계에 관한 원리로서, 주민이 지방정부의 주인이고, 주민의 의사와 통제에 따라 지방정부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민주권’을 전제로 한다. 주민주권에 기초한 지방민주주의의 강조는 국민주권 시대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제와 동일시했던 사물화의 오류를 벗어나 확장되고 심화된 다양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현대 민주주의 담론의 핵심의제는 대의민주제의 ‘민주성결함’(democratic deficit)이다. 대의정부에 대한 시민 통제력의 단절을 의미하는 민주성결함은 엘리트중심의 정치와 행정이 주인-대리인 관계를 망각하고 그들만의 게임에 몰두하면서, 정치과정에 대한 시민의 좌절감과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키워온 결과를 포착하기 위해 탄생한 개념이다. 이러한 정치적 소외와 불신은 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투표와 같은 전통적 정치참여 형태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축소된 민주주의’를 야기하고, 국가정당성의 위기로까지 귀결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선거제도 개혁만으로 대의민주제의 민주성결함을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결론 속에서 직접민주주의(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발의 등), 숙의민주주의(공론적 여론조사, 시민배심원제 등), 결사체(풀뿌리)민주주의 등 다양한 대안적 민주주의 담론이 형성되어왔다. 새로운 관점들은 민주주의 혁신을 위해서는 시민의 투표행위 이상의 관여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고, 시민참여과정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참여유형의 확대와 강화는 주로 주민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지방정부를 무대로 전개된다. 대안적 민주주의 제도유형은 각자의 장단점을 가지고 상호 배타적이 아니기 때문에 지방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제도 실험을 동시에 전개해나갈 수 있다. 참여방식의 다양화와 활성화는 투표행위를 넘어서는 주민주권 행사방식의 확장과 강화를 의미한다.
현대 민주주의 관점으로부터 주민주권에 기초한 지방민주주의의 재해석은 단순히 유권자로서의 주민 역할을 넘어서서 좀 더 적극적인 정치 또는 행정과정에의 참여를 통해 지역의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주체로서의 주민을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주민들 경험은 ‘가까운 정부’야말로 ‘좋은 정부’라는 인식의 변화와 함께 좀 더 많은 권한과 자원이 자신들에게 가까이 있을 때 자신들이 원하는 정부를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주민들을 지방분권의 적극적 지지자로 이끌게 된다는 점에서 지방분권의 전략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더 나아가서 지방민주주의 활성화는 지방자치를 단순히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게 부여한 권력의 양으로 사물화하거나 지방이 주권국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기존의 하향적 관점을 극복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즉, 지방자치는 더 이상 국가권력 또는 중앙정부의 배려에 의해 주어지는 재화와 같은 것이 아니라 지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와 역량강화를 통해 차별화된 장소의식과 지역정체성을 형성해가면서 국가를 비롯한 다른 지역과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로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