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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가 프랑스와 독일 등 대륙법계 국가의 단체자치와 영국과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의 주민자치로 구분 되듯이 경찰제도도 유사하게 분류될 수 있다.
대륙법계 국가의 경찰은 법과 규정에 근거한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며 공공의 안녕질서와 법적 정의실현에 집중하는 국가의 목적에 충실한 경향이 강하고, 영미법계 국가의 경찰은 시민들이 스스로 치안을 책임지던 오랜 전통으로 인해 시민 중심적이며 범죄에 대한 예방 및 통제 못지않게 주민들의 삶의 질 제고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치치안을 특징으로 한다.
경찰제도의 이러한 엄격한 구분은 사회의 다원화와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희석되고 변모되어 왔는데, 현재의 각국경찰을 분권화 정도를 기준으로 집권형·분권형·절충형 경찰제도로 구분할 수 있다.
집권형 경찰제도 국가로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있으며, 분권형의 국가로는 미국, 캐나다, 독일 등이 언급되고, 절충형의 대표적인 국가로 일본, 영국 등을 꼽을 수 있다. 각 유형별로 대표적인 국가를 중심으로 자치경찰제 운영방식을 살펴보면 내년 시행을 앞둔 우리나라 자치경찰제 모형의 위치를 가늠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먼저, 집권형 경찰제도의 대표적인 국가로서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절대군주의 권한이 강한 경찰국가시대를 거치며 통치권적 경찰개념에 의한 집권형 경찰제도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내무부에서 관장하는 국가경찰과 군경찰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국가경찰체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 소수의 인력을 자치경찰로 선발하여 지역의 수요에 따른 치안활동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전국적으로 기초자치단체에 해당하는 꼬뮌이 3만 6682개가 있는데 이 중 11% 정도의 꼬뮌장이 관광 등 지역의 특성 상 추가적으로 치안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치경찰을 선발하여 운용하고 있다. 그러한 꼬뮌의 90% 이상이 5명 내외의 소수인력으로 자치경찰을 구성하고 있고, 자치경찰은 대체로 예방순찰, 주차단속, 교통단속, 시장질서 단속 등 매우 제한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이러한 기초단위에서의 자치경찰제도는 2006년에 출범한 우리 제주자치경찰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는데, 각 지역의 수요에 따른 주민밀착형 치안행정을 보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지극히 제한된 자치경찰 사무범위와 국가경찰의 전국단위 종합치안활동으로 인해 경찰력의 분권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분권형 경찰제도는 영국의 오랜 주민자치치안이라는 역사적 전통에서 시작되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영국이 경찰에 대한 영향력을 내무부와 광역자치단체에 분산하는 절충형 경찰제도로 전환하면서 오히려 미국이 분권형 경찰제도의 전형을 보이는 대표적인 나라가 되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대학에는 대학경찰, 공원에는 공원경찰, 도시에는 도시경찰, 고속도로에는 주경찰, 우체국에는 연방경찰 등 다양한 경찰이 상호 상명하복 관계가 아니라 각기 독립된 기관으로 수사·생활안전·교통 등에 대한 통합적인 치안행정을 수행하고 있는 점에 놀라게 된다. 1만 8000 여개에 달하는 연방경찰, 주경찰, 도시경찰, 읍·면경찰 등이 서로 독립적으로 활동하되 필요시에 상호 연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기초단위의 경찰을 치안의 근간으로 하고 주와 연방이 보완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미국은 엄격한 기초단위 분권형 자치경찰에 해당한다.
소수 몇 명의 경찰관이 근무하는 대학이나 공원경찰에서 수천 명으로 구성된 도시경찰에 이르기까지 해당 경찰이 방범, 교통은 물론 일반적인 사건수사 등을 독립적으로 담당하는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분권형 자치경찰 구조 속에서 효율성이 종종 화두가 되기도 하지만 민주적인 지방자치의 핵심적인 가치로 선출직에 의한 경찰권의 통제를 중요시하기에 이러한 제도적 근간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절충형 경찰제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을 들 수 있는데, 경시청을 포함해 47개 도도부현의 광역단위 자치경찰이 광역자치단체장 소할 하의 도도부현공안위원회 관리를 받으며 운영되고 있다. 경찰청은 도도부현경찰에 대한 일정부분의 예산권과 도도부현 총경이상에 대한 인사권을 중심으로 국가경찰사무 수행과 전국적으로 통일성 있는 경찰활동 전개를 위한 기획과 조정업무를 진행한다.
원칙적으로 일반적인 경찰사무는 도도부현경찰이 담당하고 국가경찰은 전체 경찰인력의 2.7% 정도의 소수인력으로 국가적 사무와 전국적 이해가 걸린 사무에 집중한다. 정치권력과의 유착과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중앙에는 국가공안위원회, 지방에는 도도부현공안위원회를 두고 경찰을 관리하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의 도도부현자치경찰은 경찰청으로부터 분권화된 독립된 조직이면서도 국가적 이해와 결부된 경찰사무를 위임사무로 집행한다는 점과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자치경찰보다는 경찰자치에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동안 중앙집권형 국가경찰체제를 유지해온 우리나라에서는 지방분권과 주민밀착형 치안이라는 민주적인 대의를 위해 광복이후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던 자치경찰제를 내년에 서울·세종·제주 등 5곳에서의 시범실시를 시작으로 2022년에는 전국의 모든 17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의 밑그림을 살펴보면, 생활안전, 지역교통, 지역경비 등 주민밀착형 사무 대부분과 경찰인력의 36% 가량이 자치경찰로 이관되고 정치적 중립확보를 위해 독립적인 시·도경찰위원회가 자치경찰을 담당한다.
프랑스에서처럼 국가경찰이 전국적으로 치안의 주요 골격을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자치경찰로 이양되는 획기적인 사무범위나 인력수준 및 합의제행정기관으로서의 시·도경찰위원회 기능 등으로 인해 향후 일본이나 영국 등 광역단위 절충형제도와 유사하면서도 한국적인 특수성을 반영하며 발전해갈 수 있도록 설계한 독특한 자치경찰제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치안수준이 세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자치경찰제로의 이러한 변화가 그동안의 집권형 국가경찰체제의 비효율성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경찰력의 분권화를 통해 국가공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지역주민의 치안수요에 더욱 부응함으로써 1991년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지방자치의 민주적 흐름에 충실하고자 하는 취지에 따른 것이기에 지방자치의 발전 속도에 발맞추어 우리의 자치경찰제 모형도 더욱 승화되어 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