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분권위원회

전문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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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분권을 위한 국고보조금제도의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작성자
관리자
게시일
2017.11.03
조회수
2,781
 

이재원

부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재정분권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재정수요를 자기 지방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부분이 많아야 한다. 중앙정부의 보조사업과 보조금 규모가 커지면 지자체는 독립적인 행정 및 재정 주체가 되지 못하고 중앙정부의 산하기관이 될 수 있다.

 

  지역정치의 현실에서는 국고보조사업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국고보조금이 많다는 것이 지자체의 재정에 반드시 유리하지 않다. 보조사업은 지방의 자체 재원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위험한 통로일 수도 있다. 지역개발에서는 보조사업이 지역의 내생적인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보조금의 역습’도 발생한다.

 

  중앙부처들도 지자체에 위탁집행을 부탁하는 국고보조사업이 많아지면 부처 사업의 성과관리에 애로를 겪는다. 자치권을 가진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의도대로 국고보조사업을 수행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재정학에서는 국고보조금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의사결정과 집행의 주체 분리에 따른 주인-대리인 관계와 도덕적 해이, 중앙정부의 정보부족에서 발생하는 정보비대칭 문제, 중앙재원의 연성예산제약과 재정 공유재의 비극, 끈끈이 효과와 중앙 재정 건전성 위기 등과 같은 부정적 요소가 많다.

 

  지방재정에서 국고보조사업의 수는 2001년도에 600여개였다. 참여정부의 분권혁신을 통해 국고보조사업의 지방이양과 균형발전특별회계 전환이 있었다. 이에 따라 2004년에는 350여개로 대폭 축소되었다. 그런데, 이후 증가하여 최근에는 800여개가 되었다. 2007년도에 국고보조금은 21.2조원이었는데 10년이 지난 2017년도는 46.4조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의 보조사업 규모가 절반 이상인 26.8조원이다.

 

  복지부를 포함하여, 환경부, 국토부, 농림부, 문화부 등 상위 5개 부처에 국고보조금의 88.1%인 40.9조원이 집중되어 있다. 이에 따라 국고보조금의 쟁점은 재원총액 규모에서 발생하는 동시에 개별 부처의 ‘보조 사업’에 대한 특수 문제이기도 하다. 복지보조금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의무 분담하는 지방비 비중이 상당하다. 물가상승률이나 빈곤선 등과 같이 지자체의 의사결정과는 상관없이 국가 기준에 따라 지출이 증가된다. 문화부의 국고보조사업은 특별회계와 기금 사업이 많다. 농림부는 농어촌특별회계 사업이 많다. 여기에는 재원 특성상 재원칸막이와 지대추구의 비효율성 쟁점이 발생하기 쉽다.

 

  보조사업별 기준보조율과 관리 방식은 80년대 지방자치 실시 이전에 설계된 낡은 플랫폼이다. 지금 제도는 90년대 지방자치 부활에 따른 분권화된 정부간 관계 형성, 2000년대 국민의 복지권리를 인정한 사회복지사업의 급증, 자율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공공관리혁신, 그리고 시민사회 참여의 활성화 등의 환경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 그동안 보조사업 확대를 통해 중앙과 지방이 지역의 사회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긍정적이지 않다. ‘노력’이 아니라 낡은 ‘제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낡은 틀을 수선하기 보다는 새로운 플랫폼을 고민해야 한다.

 

  국고보조금 제도의 개편방향은 단순하다. 국고보조사업의 지방이양을 통해 보조금 총량의 규모와 개수를 축소하여 쟁점의 여지 자체를 해소해야 한다. 정기적인 조사를 통해 조직-인력-재원-사업을 함께 일괄이양해야 한다. 이를 중앙과 지방의 정치권력관계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지역의 사회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능’으로 접근해야 한다.

 

  숫자상으로 전체 보조사업 수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지역발전특별회계 생활기반계정 사업들의 지방이양을 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사업별 재원배분 규모를 지자체가 자율 결정하지만 개별 사업들을 17개 중앙 각 부처에서 과거의 보조사업과 동일하게 수직 관리한다. 각 부처는 재원배분 권한없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사업관리를 위탁 대행한다. 이에 따라 개별 사업의 성과에 대한 책임 주체가 불확실하다. 지역발전특별회계에는 종합적인 성과계획서와 성과보고서가 없다. 지자체별 재원배분 산식이 공개되지 않는다. 국회 예산과정에서도 개별 사업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기 힘들다. 재정민주성이 취약한 가운데 많은 국고보조사업들이 운영된다.

 

  지방이양이 곤란한 사업은 중앙정부가 ‘직접’ 집행하는 대안도 있다. 국가 표준적인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은 중앙정부가 사업의 성과에 직접 책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생계급여나 기초연금과 같은 현금급여사업들은 보건복지부가 행복e음시스템의 정보를 이용하여 수급자들의 은행계좌에 복지급여를 이체하는 복지뱅킹을 실시하면 된다. 복지사각지대 문제를 중앙-광역-기초-읍면동에 이르는 긴 복지전달체계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현금급여를 국가사업으로 전환하여 복지부가 직접 사업을 수행하면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문제해결과 전달체계의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기초복지에 대해 국고보조금 지원을 확대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낮아지는 동시에 지자체의 보조금 지불정산 업무가 가중된다.

 

  국고보조사업이 재정관리 실패 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업이 실제 의도한 구체적인 성과책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중앙-광역-기초로 연결되는 중층적인 관리체계를 단층화해야 한다. 소규모 영세 보조금들은 한 바구니에 묶어 문제해결을 위한 성과지표를 중심으로 성과계약형 포괄보조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 국고보조사업의 성과책임 방향은 중앙정부 부처 보다 지역주민과 지역개발의 현장을 지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재정 모두의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국고보조금 총량제’와 국비 중심의 국고보조사업 예산이 지방세출 구조를 왜곡시키지 않는 ‘보조금 준칙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고보조금은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을 보장하는 ‘지방’의 재원인 동시에 세출에서 지자체의 윗방향 책임을 보장하기 위한 ‘중앙’의 재원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국고보조금을 ‘지방’의 재원으로 전제하면 새로운 대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보조사업 유치를 위해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중앙 각 부처에 다니는 소모적 출장시간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대신 자기 지역의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의 현장을 뛰고 지역맞춤형 문제해결 방안을 자체적으로 설계하는 지역의 시간이 많아야 한다. 중앙정부는 재정총량을 보호하는 소극적인 국고적 목적 보다는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사회 경제적 문제를 중심으로 비용-효과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제도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