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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
(상생협력지원센터 소장)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목표 중 첫 번째 ‘국민이 주인인 정부’에서 제도와 일상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정부 시스템을 추구하고, 대통령의 특권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하여, 국정목표 4번째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을 달성하기 위해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제시하고 있다. 자치분권을 이루기 위해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방재정 확충을 통해 지방분권을 추진하며, 주민자치 확대를 통해 지역 현장에서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현을 약속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자치분권 국가와 재정분권 실현’에 대한 약속은 2018년 6월 전국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질 예정인 헌법개정 국민투표와 함께 지켜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의 핵심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과 입법권을 보장하는 등 실질적인 권력구조 전반에 분권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과 입법권이 지방자치법이 아닌 헌법적 권리로서 보장되는 것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지방분권이 행해지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지방분권과 관련한 사례들을 살펴본다.
첫 번째, 미국이다. 미국은 연방국가이다. 미국 정부체제하에서의 정부단위는 연방정부, 주(州)정부, 지방자치단체 또는 지방정부이다. 주정부 이하의 지방자치제도에 관한 사항은 주헌법이나 주법률에서 규정한다. 주정부는 연방정부의 행정기관이 아니며, 연방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독립된 주권(입법, 사법, 행정의 전 영역)을 영유한다. 미국헌법은 연방제국가를 창설하는 헌법이며 대등한 관계를 이루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주권을 분점하는 중앙국가(연방정부)와 지방국가(주정부)를 상정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헌법에는 지방자치제도나 지방분권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다. 지방정부의 조직, 권한에 대한 전권은 주정부에게 있으며, 각각의 주정부는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지방정부 즉 지방자치제도에 관한 법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미국 연방헌법은 지방정부에 대한, 즉 지방자치를 부정하거나 긍정, 또는 어떠한 언급 및 보장도 하고 있지 않다. 이는 지방정부나 지방자치가 미연방 체제 내에서 가지는 명확한 위상으로 인해 연방헌법이 굳이 이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연방헌법이 지방정부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음으로 인해서 지방정부에 대한 전권은 각 주정부에게 있다고 본다.
미국의 연방제는 200여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연방제가 강화되는 집권화가 진행되었다. 미국 연방제가 연합규약에서 1787년 연방헌법 체제로 이행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전쟁, 뉴딜기를 거쳐 연방정부가 강화되는 집권화가 진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연방주도형의 연방과 주의 관계가 형성되었으나, 연방제의 권력분립의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권력이 집중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주정부가 단순히 지방행정단위가 아니라 정치주체로서 연방정부에 대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제도로서의 연방제를 하면서도 실제적으로 단일제와 마찬가지의 국가도 많지만, 미국의 연방제는 행·재정적인 중앙집권화와 정치적인 분권이 공존하고 있다.
두 번째로 프랑스의 경우이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인접 유럽국가들과 비교하여 강력한 집권적 지방행정체제와 상대적으로 약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있는 국가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좌우파 정권의 교체에도 지속적으로 지방분권과 관련한 정책을 추진하여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어 왔다. 한편 1982년 3월 2일 법률(레지옹, 데파트망, 코뮌의 권리와 자유에 관한 법률)과 1983년 1월 7일(제정)과 7월 22일(개정) 법률(코뮌, 데파트망, 레지옹과 국가간의 권한배분에 관한 법률)에서 시작한 중앙-지방, 지방간의 권한배분에 관한 대수술은 프랑스를 단일국가 형태의 대표적 지방분권 체제를 운영하는 국가로 변모시켰다. 또한 2003년 3월 28일에 있었던 헌법개정은 제1조에서 “국가조직 형태를 분권화 한다”고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우리의 지방자치에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관한 제12장의 내용을 전면 개정함으로써 법률적 차원에서 시작한 지방분권 개혁을 헌법적으로 격상시켰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지방분권 헌법개정에서 새로이 등장한 사항으로는 국가조직의 지방분권화(제1조제1항 4문),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의 열거 및 법률에 의해 새로운 유형의 창설(제72조 제1항), 보충성의 원칙(La subsidiarité, 제72조2항), 지방의회의 명령제정권 천명(제72조제3항) 등 다양하다. 2003년 3월 이후의 프랑스 헌법은 제1조에서 지방분권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률적 차원에서 지방분권을 진행해 왔던 지방분권 제1기(1982년-2003년 3월 개정 이전)에 비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영국의 경우이다. 영국은 주민자치에 기초한 분권적 체제를 기초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후 국내적으로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하여 중앙집권적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재정지출 증대와 오일쇼크에 의한 경쟁력 약화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경제재건의 명분하에 추진되었던 보수당 정부의 중앙집권화 노력은 노동당의 등장으로 지방분권으로 전환된다. 노동당 정부의 지방분권 개혁은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의 ‘지방정부 헌장’에 서명함으로써 분권의지를 명확히 하였고, 영국의 분권개혁은 유럽연합의 틀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관련한 연혁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고, 최근까지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편 영국은 단일제 국가이면서도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지역에 의회구성을 규율하는 법률(The Scotland Act 1998, The Government of Wales Act 1998, The Northern Ireland Act 1998)을 제정하는 등, 대폭적인 권한 이양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 아일랜드에 각각 의회를 구성하고 이에 권한을 이양하였으나, 권한 이양의 정도는 지역마다 차별적이고 비대칭적이었다. 한편 영국 의회(Westminster Parliament)는 언제라도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법률을 폐지하거나 개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영국은 진정한 의미의 연방제 국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2000년대 이후 지방정부법(Local Government Act 2000)과 2011 지방주의 법(Localism Act 2011)의 제정을 통하여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2011 지방주의법은 잉글랜드에 대해 적용되는 법으로서, 잉글랜드 지방정부에 관해서는 전권한성을 선언하고 있다. 지방주의법 제정으로 지역사회 및 주민의 복지증진에 관한 3개 분야(사회복지, 환경, 경제)에서의 정책을 일정한 제약 하에서 자유롭게 수립 및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네 번째로 독일의 경우이다. 독일의 지방분권의 개념은 특정의 한 원인으로부터 발전된 것이 아니라 중세와 프랑스혁명 등 다양한 사회변혁을 거치면서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발전되게 되었다. 독일은 군(Gemeinde)과 도시(Stadt)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발전하는 계기를 바탕으로 지방자치가 시작된 국가로서 군과 도시가 일정한 무리를 이룬 것이 주(州, Land)가 되고 이것을 결속시킬 정치적 필요가 대두됨에 따라 연방(Bund)을 형성한 연방국가이다.
독일의 각 주들은 자체의 주헌법(Landesverfassung)을 제정해 두고 있으며, 이에는 입법, 사법, 행정권이 각 주정부에게 보장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광역자치단체와 비교하여 차이점이 매우 크다. 오히려 주(州)안에 설치되어 행정사무를 다양하게, 그렇지만 통일성을 기해 처리하기 위해 설치된 다양한 행정단위(Gemeinden, Gemeindeverbände, Kreis, Stadt, Kreisfreie Städte)들이 순수의미의 자치행정단위라 할 수 있다.
또한 독일 연방헌법과 연방주의 헌법에 의해 보장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제도는 1990년의 독일통일과 유럽연합의 출범을 계기로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다. 구동독 연방주의 통합과 함께 사회주의적 정치문화와 기존 독일의 연방주의를 절충하기 위한 조절적 정치체계의 일환으로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 주민참여제와 같은 강력한 직접민주제의 도입을 가져왔다. 그리고 1993년 마하스트리히트조약으로부터 유럽연합 헌법안에 관한 리스본조약에 대한 2005년 독일 연방의회의 의결에 이르는 독일의 유럽연합화 과정은 2006년과 2008년 2번의 독일 연방헌법 개정을 통한 연방주의개혁(Foerderalismusreform)이라는 지방분권에 관한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경우로서, 지방분권과 관련하여 지방분권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헌법상 조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 제92조에 ‘지방자치의 본지’가 지방분권 차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중앙정부에 의한 분권정책, 특히 사무이양에 의한 분권에 의존하고 있어서, 1999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분권정책을 추진하여 왔으나, 그 효과는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는 지방분권에 있어서 사무이양과 같은 정책만으로는 분권에 한계가 있으므로, 거시적이고 국가적인 분권정책이 필요하다는 것과 특히 헌법상의 4개 조문만으로는 지방분권 정책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김동성(2010). 연방주의적 지방분권에 관한 연구, 경기개발연구원
전훈(2010). 2003년 개헌 이후의 프랑스 지방분권, 한국지방자치법학회, 10(3), p. 3-30
최봉석(2016). 독일 연방주의 개혁과 지방분권의 강화, 한국비교공법학회, 17(1), p. 69-101
최용환(2014). 미국 지방자치단체의 구조와 지방분권, 충북발전연구원, 해외리포트 Vol.15
최우용(2015). 일본 지방분권개혁의 주요 내용과 최근동향, 한국비교공법학회, 16(3), p. 17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