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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헌법 / 법사회학)
작년 5월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후보자들 전부는 2018년 6월 13일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헌법 개정을 완료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지난 15년간 한국 사회에서 줄기차게 제기되어 온 헌법개정논의를 1987년 체제를 극복 또는 보완하는 방식으로 생산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정치권 전체의 대국민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8개 월 가량이 흐른 지금까지 여야의 개헌 협상은 중앙권력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에 부딪혀 도대체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각 정당들은 이제야 당론으로 헌법개정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공표한 상태이고, 개헌 협상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또다시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익숙한 환멸의 그림자가 어른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2018년 2월 현재 위의 대국민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지방선거일은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개헌에 대하여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로 지방선거를 맞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작년 대통령 선거 이후 1년여 만에 민심을 표현할 기회를 잡은 유권자들이 가만히 있을까?
앞서의 대국민약속을 짐짓 도외시하고, 빈손으로 지방선거를 맞이하는 정치 세력들은 아마도 극도로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한 정치적 결과를 낳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정치 세력일수록 유권자의 엄중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작년 대통령선거의 대국민공약은 단순히 지방선거일에 개헌국민투표를 진행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번거로움을 줄이는 정도의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1987년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의 시점을 지방선거일에 맞춤으로써 새로운 헌법에 의한 유권자들의 첫 번째 선택을 지방권력의 재구성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헌법 개정으로 마련된 새로운 부대에 지방선거를 통해 표출된 주민들의 선택으로부터 새 술을 마련하겠다는 뜻인 셈이다.
이러한 대국민 약속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는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 원리에 비추어 당연한 이야기이다. 헌법 개정을 통해 자치분권이 획기적으로 증대되면 지방권력의 크기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방선거를 먼저 치르고 그 뒤에 헌법을 개정한다면, 결국 새로운 헌법에 의해 확대된 지방권력을 헌법 개정 이전에 선출된 정치세력에게 맡기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작년 겨울 전국을 달군 촛불 시민들의 요구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정신으로 요약된다. 이를 자치 분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어떤 정치세력에게 지방정부의 권력을 맡길지를 주민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가 된다. 주민의 지방정부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치 분권 개헌은 출발점에서부터 꼬일 수밖에 없다.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일에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던 국민적 합의에 대하여 최근 일각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거구도 상 기왕에 차지한 지방권력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선 한번쯤 솔깃할 수도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소탐대실의 결과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로 인해 주민의 지방정부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유권자들은 이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근본 요구를 저버린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개헌 시기에서부터 주민의 지방정부 선택권을 보장하려는 발상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