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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2017년 가을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자치의 날 행사에서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분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실제로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추진하겠다는 실천적 의지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 여전히 지방자치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자치분권 추진의 당위성에 대하여 논의한 후, 자치분권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몇 가지 애로사항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첫째, 자치분권 추진을 염려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는 ‘분권이 국가경쟁력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권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설령 국가경쟁력을 해친다고 하더라도 자치분권은 우리가 추진해야할 목표 그 자체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핵심 정신은 사회 구성원인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점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명료히 하고 주권자가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며, 이러한 혁명 정신은 그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른바 민주공화정(the Republic)의 확산이며, 바다 건너 미국은 민주공화정 정착의 모범국가였다. 수평적 권한 이양이라는 삼권분립과 수직적 권한 조정이라는 자치분권을 통한 민주공화정의 완성은 당시 토크빌 등 유럽 학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삼권분립 못지않게 자치분권 역시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치다.
자치분권이 미흡한 상황에서 국민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연구는 많다. 새로운 시대에 자치분권을 통해서 국가경쟁력이 더 제고될 것으로 확신하지만, 반드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자치분권을 추진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치분권은 헌법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제도적 장치이자, 그 자체로 목표다. 헌법가치(constitutional values)는 우리가 지향하는 공동선(common good)이다. 국민이 주인 노릇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헌법가치다. 따라서 자치분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경쟁력 제고 여부 등 군더더기 논리들은 원천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둘째,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할 사무가 많지 않다는 염려다. 중앙정부가 지방에 사무를 이양한다는 시각을 갖게 되면 이런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근대 국가의 등장 관련 많은 논의가 있지만, 사회계약론을 굳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국민이 만들어낸 피조물임에 틀림없다.
특히 현대 국가는 일종의 에이전트로서 납세자(taxpayers)인 주권자의 요구를 충족하고자 만들어진 정부로서 기구다. 주권자인 국민은 땅(지방)에 근거를 두고 생업에 종사한다. 국가는 일종의 가상(중앙)의 대리 기구다. 모든 사무와 재원은 원칙적으로 지방에 속한다. 필요에 따라 부득이하게 상급정부에 사무와 재원을 이양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이와 같은 사무의 상급 정부 이양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실제로 했고 이에 기초하여 지방자치가 운영되고 있다. 근대 국가 설립 논리에 동의한다면 지방고유권설에 근거하지 않은 일체의 이론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공유해야할 시점이다. 중앙정부는 상가번영회와 동일한 논리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동안 추진되어온 지방이양 작업이 지지부진한 근본적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필요에 따른 지방이양 사무 발굴에 기인한 것이다. 필요를 기준으로 보면, 국가사무가 적어도 65%나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완충 재원을 감안하면 국가와 지방의 수입 배분 구조가 필연적으로 8:2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모든 사무는 원칙적으로 지방사무라고 간주한 상태에서 국가사무를 발굴해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일괄이양법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으려면 사무 배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 논리는 재원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상가번영회는 상인들의 갹출로 운영된다. 중앙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재원을 국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다.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하다면 지방정부로부터 재차 승인을 받아 갹출해야할 것이다. 지방이 곧 나라의 주인이라는 관점을 공유해야 하며, 이는 주인 논쟁과 관련된 촛불혁명의 정신과도 맥락을 함께 한다.
셋째, 자치분권을 염려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분권이 자칫 지역 간 격차를 더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민주주의 확립과정에서 공화국의 핵심 가치는 동등한 권리(equal right)였다. 한편 근대민주주의 확립과정에서 공화국의 핵심 가치는 자유였다. 절대왕권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치분권 세력과 균형발전 세력이 민주주의의 두 가지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경쟁하는 국면이 전개되었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최근 스페인 카탈루냐 사태 역시 분권과 집권 간 세력 대결로 이해할 수 있다. 어쨌거나 자치분권을 추진함에 있어서 염려되는 지역 간 격차 발생의 문제는 적어도 이론적 역사적 맥락에서는 납득이 가며, 자치분권을 추진하는 주체 입장에서는 해결해야할 과제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재정분권을 추진함에 있어서 필요한 전략적 조치는 무엇인가? 우선 재정분권의 개념을 세분화하고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 재정분권은 수입 측면과 지출측면으로 구분되어 이해된다. 재정분권의 본래적 개념은 지출에 있어서 재량(discretion)권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수입측면에서의 분권은 사실상 연방국가에서나 가능한 개념이며 단방국가에서는 재원의 공유가 불가피하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간 재산세 공동 활용 제도, 중앙정부의 보통교부세 제도 등이 일례다.
지방소비세 도입 과정에서 설치한 지역상생발전기금과 재원배분 공식에 차등적 가중치 부여 등도 수입측면에서의 재정분권이 사실상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출측면에서의 분권은 과감하게 추진하되, 수입 측면에서의 분권은 정밀한 설계의 수반이 중요하다. 종합부동산세의 활용,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의 변경 등 다양한 옵션이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협력 모델도 적극 검토해볼 수 있다.
넷째, 권한을 이양 받은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염려다. 예컨대, 인사 조직과 관련된 일체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할 경우 국민여론대로 방만하게 운영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다.
지방자치단체와 관련된 인사 조직 권한의 상당 부분이 이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급 이상 정원 관리 등 일부 권한은 여전히 행정안전부에 남아 있다. 자치단체에서 요구한대로 모든 권한을 넘겨주면 국가경쟁력이 저하된다고 걱정하는 여론이 여전히 높다. 자치단체 운영과 관련된 자치분권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선 지방의회를 활성화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대통령과 단체장 간의 거래를 지방분권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견지할 경우, 국민들은 다수의 제왕적 단체장의 등장보다 오히려 한 명의 제왕적 대통령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삼권분립을 통하여 절대 권력을 약화시킨 것처럼 지역사회에서도 삼권분립의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지방의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기관 구성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 지방의원은 헌법에서 선출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단체장의 경우 선임방식을 법률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으면 의회 주도형 기관통합형을 수용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하여 계선 중심 중앙집권적인 정치 행정 문화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의회의 활성화 못지않게 주민에 의한 직접 통제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주민민주주의라고 명명된 읍면동의 활성화를 스마트 행정과 연계한다면 지방자치단체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뿐만 아니라 단체의 경쟁력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 관련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비교 평가해서 더 이상 방만한 경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원천 차단해야 할 것이다. 기타 파산제도 등의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만이 지방자치단체의 방만 경영을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관점을 버려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