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자치 우수사례]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허물다
– 텃밭공동체 찬우물 이야기 ② -
노계향 전문위원(자치분권위원회 분권지원담당관실)
[편집자 주]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정부의 핵심국정과제인 자치분권 실현을 노력하는 현장의 마을자치 우수사례를 발굴하여 게재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도시농업 가치를 실천하며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노력하는 텃밭공동체 ‘찬우물 이야기’를 지난 호에 이어 두번째로 연재합니다.
텃밭공동체 찬우물은 도심을 중심으로 텃밭농사를 확산하고, 도시농업의 가
치를 알리며, 조화로운 도농복합지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찬우물의 도시농부학교에서 양성된 텃밭가드너들이 고양시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
으며,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한마음 프리마켓을 고양시와 함께 운영, 공동체의
식의 확장을 꾀하는가 하면, 마르쉐장터 등 고양, 서울의 직거래 장터에서 생산한
작물과 가공품의 판매를 통해 도시농부의 활로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땅이 내어주는 수확물이 다름을 알고 나니 제 때가 아닌 음식을 마주하기가 부담스러워 계절밥상을 만들었습니다. 제철요리를 만들어 맛보고 평가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점점 욕구가 커지고 다채로워졌습니다. 단순히 심고 나누고 즐기는 차원을 벗어나 도심농업과 공동체의 의미에 대한 체계적 가치적립도 필요해졌습니다.)
공부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텃밭을 만들다
이 때, 고양시의 자치공동체사업을 만났습니다. 찬우물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찬우물의 모든 공동체들이 모여 자치공동체사업에 공모하기 위해 찬우물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프로그램들을 하나의 사업으로 엮었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공동체가 함께 배우는 ‘봄, 가을 절기농사’, 텃밭요리사들과 함께 절기에 맞는 제철 요리를 즐기는 ‘절밥’(절기서당 제철밥상 프로젝트), 쑥버무리 만들기, 페트병에 벼 심기, 창포 천연샴푸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하며 24절기를 배우는 ‘절기야 텃밭에서 놀자’, 절기에 맞게 함께 모여 체험과 발표를 하는 ‘절기축제’, 수확물을 나누는 ‘찬우물네 농부의 벼룩장터’ 등입니다.
찬우물이 자치공동체 사업을 진행한 지난 2년, 텃밭에서 이뤄낸 ‘절기서당 제철밥상 프로젝트’는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건강한 공동체 복원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2018년은 진행해온 모든 프로그램의 정착기입니다.
찬우물 각각의 공동체가 운영 주체가 되어 절기축제를 엮어내고, 토종작물을 활용한 자연순환농법을 실천해갑니다. 자급과 자족을 실험해가며 도시농부로서의 삶을 주변에 확산시켜 갑니다. 개개인은 절기를 통해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사계절을 겪어내며 자신과 마주하는 공간으로써의 찬우물 생활을 영위합니다.
찬우물은 도심과 농촌을 잇는, 자급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는, 모든 것을 함께 하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모여서 필요한 일을 하는 느슨한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찬우물에 있는 것과 없는 것
280여명이 함께하는 찬우물에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오가는 자리에 흔적이 남지않아야 합니다. 농기구는 사용 후 꼭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합니다. 4명 이상의 인원이 모이면 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습니다. 단, 공동체 활동이 있은 후 꼭 후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농사 이외에 다양한 체험과 공간이 있습니다.
퇴비를 만들기 위한 생태화장실, 배움공간으로, 취식공간으로 활용가능한 쉼터, 아이들의 놀이공간과 학습터, 텃밭정원과 조롱박 터널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한 다채로운 체험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농사에 대한 철학이 있습니다.
꽃과 벌레와 풀이 농작물과 어울려 자라는 공존의 텃밭을 지향합니다. 되도록 씨앗보다는 모종을 지향합니다. 외래작물보다는 토종작물을 지향합니다. 혼자보다는 함께를 지향합니다.
찬우물에 없는 것은 딱 세 가지입니다. 비닐, 농약 등의 인위적인 약품 그리고 공동체간의 빗장입니다.
지금은 깔끔하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정리되어 있지만 합의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찬우물의 약속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새 비닐멀칭*을 해놓는가 하면 화학비료를 뿌립니다. 사용한 농기구를 버려놓고 가기 일쑤고 쉼터에 음식물쓰레기가 넘쳐나기도 했습니다.
* 지표면에 비닐을 덮어 토양 수분의 증발을 막거나 토양 침식을 방지하는 토양 관리 방법. 찬우물은 비닐 대신 풀이나 낙엽으로 멀칭을 한다.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공동체끼리의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약속된 장소 이외에 농작물이 심어지는가 하면 서로의 영역에 대한 다툼도 있었습니다. 회의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약속된 활동일을 어기는 일도 비일비재 했습니다.
밭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는 그래도 해결이 되어갔습니다. 밭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갈등의 시간을 겪으며 농사에 대해, 공동체에 대해 이해의 폭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연의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2016년, 도심양봉에 대한 꿈을 가진 꿀벌공동체가 생겼고 예상보다 많은 꿀이 수확되었습니다. 순조로운 출발에 지난 해에는 더욱 많은 꿀통을 만들었으나 예상치못한 질병이 돌았습니다. 자꾸 죽어가던 꿀벌들은 도저히 안되겠는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버렸습니다. 텅 빈 벌집.. 결국 꿀벌공동체는 일단 활동을 접고 쉬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상실감에 마음을 다잡기 힘이 들었지만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도시농부로서 점차 성숙해가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태풍, 장마, 가뭄, 냉해... 이 또한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감자축제, 수확을 즐기고 기쁨을 나누다
하하밭에서 왁자지껄 소리가 들립니다. 6월의 뜨거운 한낮. 직접 담은 효소, 장아찌, 열무김치 그리고 수확한 작물들과 쓰지 않는 장난감, 옷, 책 등을 늘어놓고 손님을 부르는 벼룩장터. 찬우물의 하지감자축제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상상밭은 도시농부들로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 마늘을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는 마늘공동체, 감자 캐기에 신이 난 어린 농부들.. 상상돔에는 프로젝트가 설치되고 함께 볼 영화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포실포실한 찐감자를 먹으며 하지의 저녁을 즐길 예정입니다.
아마도 하지감자는 땅 속에 묻힌 채 절정에 이른 양의 기운을 가득 채운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찬우물공동체의 하지감자축제는 이 양의 기운을 캐내 서로 나누며 상반기 농사를 마무리하고 가을을 준비하는 변곡점인듯 합니다. 늘 장마와 함께 맞이하는 소서. 쏟아지는 장맛비에 녹아내리는 작물과 더욱 쑥쑥 자라는 풀들, 농사의 가장 힘든 시절인 소서를 잘 준비하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해주는 것 같습니다.
찬우물, 자립을 향해 가다
찬우물은 다른 의미의 하지를 맞이하는 중입니다. 고양시 자치공동체사업은 3단계에 걸쳐 지원이 됩니다. 이제 3단계에 들어선 찬우물은 2019년 자립을 준비합니다. 입춘에 밭을 갈고, 경칩에 개구리처럼 뛰어갈 준비를 마친 찬우물이 입하의 분주한 시기를 지나 하지에 도착했습니다. 지원과 자립의 변곡점에서 찬우물은 소서의 장마, 더위, 풀과의 전쟁도 겪겠지만 이 또한 잘 통과하여 씨앗과 곡식으로 열매 맺는 한로를 향해 갈 것입니다.
찬우물과 함께 고양시에는 다양한 텃밭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텃밭공동체들과 이들의 수확물을 향유하고 나누는 장터도 생겨났습니다. 장터가 생겨나니 다양한 문화가 결합됩니다. 옛 시골장터가 새로운 모습으로 도심지에 등장한 것이지요.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공간으로 확장되면서 곳곳에 이러한 도농복합지역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찬우물을 통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공간, 도심과 농촌의 행복한 어우러짐을 보고 있습니다. 텃밭가드너, 푸드테라피스트, 직거래장터 등 새로운 직업과 문화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찬우물이 지금의 변곡점을 잘 통과하여 충분한 자립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