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자치 우수사례]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허물다
– 텃밭공동체 찬우물 이야기 ① -
노계향 전문위원(자치분권위원회 분권지원담당관실)
[편집자 주]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정부의 핵심국정과제인 자치분권 실현을 노력하는 현장의 마을자치 우수사례를 발굴하여 게재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도시농업 가치를 실천하며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노력하는 텃밭공동체 ‘찬우물 이야기’를 2회에 나누어 연재합니다.
텃밭공동체 찬우물은 도심을 중심으로 텃밭농사를 확산하고, 도시농업의 가치를 알리며, 조화로운 도농복합지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찬우물의 도시농부학교에서 양성된 텃밭가드너들이 고양시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한마음 프리마켓을 고양시와 함께 운영, 공동체의식의 확장을 꾀하는가 하면, 마르쉐장터 등 고양, 서울의 직거래 장터에서 생산한 작물과 가공품의 판매를 통해 도시농부의 활로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하지는 음양의 기운이 바뀌는 변곡의 시점이라고 합니다. 양의 기운이 듬뿍듬뿍 차오르다 절정에 이르러 그 기운을 슬그머니 내려놓는 시간. 태양은 한여름을 향해 더욱 작렬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 음의 기운을 담아가는 시기. 농부들의 손길도 점점 바빠져야 합니다. 밀, 보리를 수확하고 마늘을 캐내며 장마 대비를 해야 하는 농번기. 하지만 이 하지를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텃밭공동체 찬우물의 도시농부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도시와 농촌이 만난 그 곳, 찬우물
자유로를 넘어 경기도 고양시에 들어서면 일산신도시와 화정지구가 양 갈래로 나뉩니다. 화정지구로 들어서서 의정부로 향하는 도로에 서면 좌우로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한 쪽은 별빛마을, 달빛마을이라 불리우는 아파트지역입니다. 그야말로 무엇이 더 있을까싶을 정도의 전형적인 도시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건너편으로 눈을 돌리면 전혀 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걸림이 없이 펼쳐져있는 초록의 논밭. 일상적인 농촌의 모습입니다.
농촌이었던 고양시가 신도시로 거듭나면서 새로이 생겨난 아파트지역과 개발되지 못한 농촌지역은 같은 지역의 다른 공간입니다. 서로 다가서기엔 이질감이 너무 큽니다.
이 경계를 허물고 만들어진 공동체가 찬우물입니다. 3,000여 평의 밭에 심어진 다양한 작물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처음부터 공동체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공동체란 의식조차 없이 시작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공간이 주어지고, 공간을 활용할 콘텐츠(내용)가 생겨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뿐입니다. 하지만 찬우물은 어느 새 고양시의 다른 공동체를 엮어내는 주춧돌 역할까지 해내고 있습니다.
찬우물은 크게 두 개의 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농장 중간부에는 농업용수가 흐르는 개천이 있습니다. 이 개천을 경계로 높은 지대는 상상텃밭 1,700평, 낮은 지대는 하하텃밭 1,300평. 이렇게 찬우물은 ‘상상’과 ‘하하’ 두 지역으로 나뉩니다.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텃밭이 상상밭입니다. 늘 하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 하하밭입니다. 상상밭보다 하하밭이 더 낮은 지대에 있어서 그리 불리기도 합니다.
상상밭에는 멋진 상상돔이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돔이지만 꽤나 유명한 건축가가 재능기부한 돔입니다. 이 돔은 찬우물의 핵심기지입니다. 모든 작당이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찬우물은 그 스스로 공동체이지만 그 안에 여러 작은 공동체를 안고 있습니다. 찬우물 안에서 십여 개의 공동체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찬우물의 도시농부들, 생명을 일구다
2012년,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모였습니다. 기꺼이 공간을 내어놓은 지주님(이들은 찬우물의 이상린 대표를 이리 부릅니다)을 중심으로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함께 했습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조합은 다양합니다. 초보지주가 초보농사꾼들을 데리고 농사라는 걸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농사라는 것이 만만치않지요. 상상하고 하하거린다고 땅이 결과물을 내어놓지는 않습니다. 고양생명도시농부학교가 찬우물에 생겨났습니다. 어린이농부학교 ‘초록놀이터’도 만들어졌습니다.
차근차근 농사와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땅과도 친해졌습니다. 친해진 땅은 매일매일 다양한 수확물을 내어줍니다. 다양한 수확물은 농부로서의 자긍심과 기쁨을 내어주고 그 기쁨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공동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차도유(차가운 도시의 유기농), 찬스(찬우물 스터디), 행복중심토종텃밭, 구산찬우물마늘공동체, 소소공(소소한 마늘공동체), 농부락, 마술공(마늘보다 술 공동체), 텃밭요정들, 민들레팀, 남이 해주는 밥상, 너나들이꿀벌공동체, 두레생협감자공동체, 해농(해보자! 농사!) 꿈의학교 등등 다양한 공동체의 푯말이 찬우물에 세워졌습니다.
분명 상추는 언제 심고, 오이 지지대는 언제 세우며, 감자는 언제 수확하는지를 알고자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절기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동의보감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땅과 기후의 흐름이 몸에도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인문학 공동체가 생겨납니다.
*목민심서 : 목요일(목)의 민들레공동체(민)와 마음(심)을 나누는 배움서당(서)의 준말
계절마다 땅이 내어주는 수확물이 다름을 알고 나니 제 때가 아닌 음식을 마주하기가 부담스러워 계절밥상을 만들었습니다. 제철요리를 만들어 맛보고 평가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점점 욕구가 커지고 다채로워졌습니다. 단순히 심고 나누고 즐기는 차원을 벗어나 도심농업과 공동체의 의미에 대한 체계적 가치적립도 필요해졌습니다.
(다음 호에 2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