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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 장진호 전투기념비 헌화 행사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헌화 기념사는 받아보신 것으로 알고 있고, 로버트 넬러(Robert Neller) 해병대 사령관의 축사 부분 간략히 브리핑해 드리겠습니다.
“위대한 장진호 전투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에서 헌화 행사를 주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장진호 전투가 대통령님과는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대통령님의 가족은 특히 우리 해병 1사단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고 있다.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다. 장진호 전투에 관한 위대한 전설은 불가능을 극복한 최고의 일화로 남아 있다. 美 해병은 당시 가장 혹독한 전투 환경 8대1이라는 숫자 열세 속에서 적의 기습으로 완전히 포위됐다. 17일간 지속되었던 전투에서 영하 18도 이하의 악기상이 지속되었는데, 이런 악조건은 적의 공격 못지않은 위협 요소였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형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병은 130km를 넘는 험준한 지형을 뚫고 해상을 통해 부산까지 성공적인 작전을 완수하였다. 이 전투로 5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3명 중 1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러한 역사에 남을 승리는 단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피난민을 수송한 기록을 남겼다.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는 1만4천명을 수송했다. 대통령님, 우리 두 나라의 굳건한 동맹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직면할 도전에 대해 함께 극복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美 해병은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이 자리에 대통령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오늘 첫 번째 행사를 가시는데 대통령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셨습니다. 아까 비행기 안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이 원고를 다시 재수정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이셨는데, 굉장히 공을 들이시면서 줄을 치고 긋고 다시 수정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스케치는 넬러 대장과 로버트 블랙맨(Robert Blackman)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블랙맨 두 분이 영접했고, 대통령은 “도착하자마자 여기를 처음 왔다” 고 말씀하셨고, 넬러 대장은 “영광스럽다. 가족사와 해병대 역사가 인연을 맺고 있는 이곳 행사장에 오셔서 큰 영광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방미 행사도 성공적으로 잘 치르기를 바란다. 한-미 양국의 해병대는 형제와 같다. 부르면 언제든 우리는 달려가겠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흥남철수를 도와준 가족들, 알몬드 장군의 손자죠? 퍼거슨(Ferguson) 대령께는 “할아버님 덕분에 흥남철수를 할 수 있었고, 제가 그래서 여기 설 수 있었다” 이렇게 감사 인사를 드렸고, 포니 대령의 손자죠. 네드 포니(Ned Forney)에게는 “흥남철수가 가능하도록 큰 도움을 줘서 감사하다. 그때 9만1천명이 구출됐고, 그 피난민에 우리 부모님이 계셨다” 고 말씀하셨고.
현 보울린(Hyun-Bowlin) 여사는 “부친의 제막식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 고 인사를 전했고, 대통령께서는 “도리를 다하는 데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늦게나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고 이야기했고, 특별히 옴스테드(Olmstead) 중장 앞에서는 대통령께서 고개를 거의 90도 가까이 숙이시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옴스테드 중장은 “기념배지를 대통령께 드려도 되느냐?” 고 물어보시면서 그 당시에 처절했던 전투상황을 설명했었습니다. “3일 동안 눈보라가 왔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새벽 1시 쯤에 눈이 그치고 별이 보이기 시작해서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하셨고, 대통령께서는 “그 별을 보고 희망을 찾아서 10배가 넘는 중공군을 뚫고 나와서 결국 흥남철수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다” 고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루니(Lunney) 제독은 서신을 드렸고,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다.”
그리고 당시 빅토리아호 사진을 대통령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건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여기가 갑판인데”라고 가리키면서 “그 밑에 화물칸에도 사람들이 굉장히 꽉 차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했고. 라루(Larue) 선장님이 나중에 오셔서 수도사가 되셨는데, 거기 같이 계셨던 친구 분들도 만나셨습니다. 라루 선장님이 성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당시 수도사 동료 분들의 요청도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사진과 여러 가지 배지 등 선물을 받으시고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라고 말씀하셨고, “이제는 50분도 채 안 남았다는데 오래오래 사셔서 통일된 한국을 꼭 보셨으면 좋겠다.”
그때 라루 선장님과 수도원에 같이 계셨던 조엘 대수도원장님으로부터 라루 선장님의 마지막 모습과 그때 생존했던 시절 얘기들을 들으셨습니다.
이날 행사가 원래 40분으로 예정돼 있었는데―오후4시부터 4시40분까지 행사였으나 오후 3시50분에 도착하셔서 오후 5시까지 1시간10분 동안 진행될 정도로 대통령이 굉장히 행사에 대해서 진심으로 의미를 담고 계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석자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기념식수를 하고, 나중에 옴스테드 장군께서 기념비에 새겨진 여러 조각들, 당시 장진호 전투의 장면들이 담긴 조각들을 설명하셨고, 대통령이 경청하면서 그때 상황들을 들으셨습니다.
대통령이 오늘 행사에 헌화하신 화환 아래에는 “숭고한 희생으로 맺어진 동맹” 다른 한쪽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이렇게 태극모양으로 되어 있는 화환…, 헌화를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