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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칼라 수녀님께
수녀님의 삶을 전해 듣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오로지 섬기는 자는 위를 보지 않는다”는 말은 수녀님의 삶에 바치고 싶은 헌사입니다.
50년이라는 세월을 한결같이 낮은 데로만 향해온 수녀님의 ‘생강 같은 발’을 보았습니다.
걷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한사코 꽃을 피워온 삶이 새겨진 위대한 발입니다.
눈앞에 큰 바다와 높은 산이 있어도 그것을 건너고, 그것을 넘는 것이 사랑이라 했습니다.
수녀님이 지구 반대편 한국이라는 나라의 작은 시골, 고창 호암마을까지 찾아오신 이유를 들었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거기 있어서” 라고 하셨지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든 가리지 않고 환대해 주신 수녀님은 ‘마을의 어머니’였습니다.
푸르른 스물 다섯 살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된 지금도 늙고 외로운 이웃들의 ‘엄마’로 삶의 끝자락을 지켜주고 계신 수녀님
누군가의 짐을 대신 지고,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며 헌신과 사랑으로만 채워온 생애에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수녀님의 지극한 섬김으로,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속에 숨어지내야 했던 사람들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엄마아빠가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던 아이들이 한데 모여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변장한 천사’처럼 오셔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며 몸과 맘의 상처난 자리마다 위로와 희망을 놓아주신 수녀님,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고난 속에서 다정하고 씩씩한 수녀님의 존재가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요.
수녀님이 계셔서, 어두운 길도 등불을 켠 듯, 환하게 걸어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녀님의 몽당연필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몽당연필이라도, 아무리 불완전한 도구일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지요.
손가락 두 마디보다 짧은 몽당연필에 수녀님이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던 사람들을 애틋하게 끌어안으신 수녀님은 동고동락해온 호암마을 형제자매를 ‘가장 큰 축복’이고 ‘가장 큰 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낮은 데로, 작은 데로’ 향한 큰 사랑을 50년 동안 베풀고도, 수녀님은 “아직도 부족하다” 하십니다.
아침마다 새로 받은 선물처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쓰며 섬김과 사랑을 가르쳐 주고 계신 수녀님 부디, 수녀님이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