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있었던 상징적 장면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와대 관저 뒷산에 석조여래좌상 앞에서의 장면입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고, 보물 제1977호인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청와대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김정숙 여사와 함께 주말에 불상을 찾아 시주를 하곤 한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안내로 여야 원내대표가 오찬을 마치고 도보로 불상 앞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문 대통령이 김태년 원내대표에게 불상 앞에 있는 시주함을 가리키시면서 “여기에다 넣으면 복 받습니다”라고 농반진반으로 덕담을 했습니다.
그런 뒤 대통령께서 “김 대표님은 종교가 뭡니까?”라고 물었는데, 김 원내대표는 “기독교인데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신자한테 불상 시주를 말씀하신 셈이 됐는데, 그러자 주호영 원내대표가 양복 상의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더니 “대통령님 것과 김태년 대표님 것까지 같이 준비해 왔습니다”라고 하면서 봉투를 시주함에 넣었습니다.
이에 문 대통령이 주 원내대표에게 “복 받으시겠습니다”라고 덕담을 했었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앞서 시주하면 복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맥락이고요.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는 이후 합장한 채로 불상 앞에 서서 세 번 예를 올렸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문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이고, 김 원내대표는 기독교 신자, 주 원내대표는 불자입니다. 이렇게 세 분이 함께 예를 올리는 장면이 협치, 통합을 다짐하는 장면일지 아닐지는 춘추관 기자님들이 한번 평가해 봐 주시고요.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통일신라신대 불상이라고 아까 소개해 드렸죠, 이 불상이 청와대에 오게 된 역사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유래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1912년에 경주로 시찰을 갔답니다. 경주에 있는 일본의 한 유지의 집에서, 정확히는 경주금융조합이사라고 합니다. 데라우치가 바로 그 석불좌상을 발견했습니다. 석불좌상을 보고 여러 차례 감탄사를 연발했답니다. 당시 오래 전 언론에는 이 불상을 ‘미남 석불’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불상의 용태는 빼어납니다.
총독이 불상을 보고 감탄하는 모습을 본 경주의 일본인 유지는 불상을 총독에게 진상했고, 데라우치는 불상을 이듬해, 그러니까 1913년이죠. 서울 남산의 총독 관저로 옮겼습니다. 그러니까 원래의 자리인 천년고도 경주를 떠나 남산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죠. 그 남산에서 1927년 총독 관저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이전합니다. 그래서 또 한 번 석불좌상의 입지가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도 이 불상은 지금의 대통령 관저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청와대 내에서 이사를 합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9년에 관저를 신축하면서 그 불상이 지금의 현재 자리, 청와대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어제 그 불상 앞에서 이 소중한 보물을 하마터면 일본에게, 일제에게 빼앗길 뻔했던 사연도 전했습니다. 이 석불좌상에 반한 데라우치 총독이 일본으로 되돌아갈 때 이 석불을 가져가려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에 따르면 당시 동아일보 등이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를 일제가 가져 가려 한다고 비판 여론을 일으키는 기사를 쓰고 조선의 불교계, 문화계 등에서 들고 일어나서 결국은 보물을 지켜냈다고 합니다.
이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저런 상세한 설명을 한 뒤 문 대통령이 두 원내대표를 안내한 곳이 ‘오운정’이라는 정자입니다. 이 오운정 또한 서울시 유형문화재 102호입니다. 어제 혹시 기억하시겠습니다만 문재인 대통령께서 “국회가 제때 열리고 법안이 제때 통과되면 제가 업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발언이 오운정 가는 길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제가 어제 발언에 대해서 부연 드리면 “업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은 김태년 원내대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 점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정자에 도착했더니 정자에 ‘오운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다섯 오(五), 구름 운(雲) 자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대통령이 주 원내대표에게 “누가 썼는지 한번 확인해 보시라”고 권했고, 주 원내대표가 정자 마루까지 올라가서 낙관을 살피다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오운정이라는 글씨는 운암 이승만 前 대통령이 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야당 원내대표에게 이승만 대통령을 소개해 주신 것이죠, 대통령께서.
어제 문 대통령과 원내대표들은 오운정까지 둘러본 뒤 헤어졌습니다.
어제의 회동에 이어 오늘 문 대통령은 “여야가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추진해 보라”고 강기정 정무수석에게 지시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한번 협치를 해보자”는 어제 대통령 발언을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