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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좋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옛날에 좋은건 별루없었다
그런것중에서 아직도 고쳐지지않는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한국은 세계 최대의 아동 수출국이다
한국의 아동 수출은 이승만 정부 1953년부터 시작했다
이승만 정부 당시 아동 국제 입양의 구실은 전쟁고아 구제였다
이승만은 GI 베이비(미군과 한국인 사이의 혼혈아)를 미국에 많이
보내는 게 최고의 복지 사업이라고 천명했다
(이승만이 인종주의라는 말이있다)
심지어 부모가 있던 아이들마저 고아로 둔갑돼 미국으로 보내졌다.
국가는 민간 입양기관과 짜고 고아 호적을 발행하며 신분 세탁을 장려했다.
가난을 대물림하는 게 미안했던 부모들은 최선의 선택인 줄 알고 따랐다.
매춘부나 미혼모 여성들의 친권 포기는 어머니의 사랑과 의무로 포장됐다.
박정희 정권의 국제 입양 장려 목적은 경제발전이었다
아이가 사라지는 만큼 국가의 복지 부담이 줄어든다 이상한 판단으로
박정희 정권은 고아입양특례법까지 만들어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국제 입양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두환정권은 이민확대와 외교 명목으로 아동을 외국에 팔아치웠다
1980년대 10년간 6만5511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다
1984년에서 1988년 사이 한 해 태어난 출생아 중 1%가 넘는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다
입양된 아이 대부분 미국에 정착했다 전체 입양인의 70%가 미국으로 갔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아동의 미국 입양 붐은? 한국과 미국의 이익이 맞아 떨어진
은밀한 뒷거래였다
“기독교 이념을 신봉하는 미국인들에게 해외 입양은
인종차별과 공산주의를 박멸하고 미국의 위대함을 널리 알릴 기회였다
시간이 흘려 해외입양은 상대적으로 줄었들었지만
2018년 303명의 아이들이 국외로 입양됐다
해외입양이 줄어들면서 입양기관에 정부보조금이 늘어나고있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고칠건 좀 빨리 고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