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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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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공동성명 ( 펌 )

추천 : 4 vs 비추천 : 1
2020-07-04 10:08:37 작성자 : naver - ***
* 7.4 공동성명 ( 펌 )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는 1945년 8.15 해방과 1950년 6.25전쟁 발발 이래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간 뉴스가 발표된 시간이다.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남북한이 무력 도발을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자주적 통일을 추구할 것에 합의한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남측에서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북측에서는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명한 이 공동성명은 서울에서는 이후락 부장에 의해서, 평양에서는 박성철 제2부수상이 발표했다.

여기서 발표된 내용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한 것과, 김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 이후락 부장과 회담한 것이었다. 이 회담의 골자는 군사 사고 방지와 남·북한간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 가설에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또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한적십사가 1971년 이산가족 찾기를 제의하면서 시작된 남북 대화가 적십자사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7월 4일 남북한에서 전격적으로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마치 통일이 목전에 다가와 있기라도 한 듯이 즐거워했다. 주요한 시국사건이 나올 때마다 북한과의 연계 내지 배후설을 집어넣었던 중앙정보부의 수장인 이후락 부장이 북한을 다녀오고, 또 북측 인사가 서울을 방문하여 합의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처음 보는 국민들로서는 당연했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날부터 신문과 라디오에서는 '북한괴뢰' 내지 '북괴'라는 용어가 '북한'으로 바뀌게 된다. 또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의 권력자 박성철과 악수를 하는 장면이나 이후락 정보부장이 김일성과 만난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남북간의 합의는 통일의 열망으로 이어져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연쇄적으로 펼쳐지자 기존의 반공교육을 정책 기조로 한 교육계에서도 반공교육의 기조를 재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또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등 당시 보안관계법들도 7.4 공동성명의 취지에 맞춰 개정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정부가 통일논의를 독점하기 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민간 차원에서의 남북교류를 통해 다차원적 남북대화가 이뤄져야 실질적인 통일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문교부는 전국교육감 회의를 며칠 뒤 개최하여 오히려 '반공교육'의 강화를 다짐하였고, 보안관계법도 남북공동성명 내용의 범위에서의 발언에 대해서만 문제삼지 않겠다고 검찰에서 발표한다. 또한 민간 차원의 통일논의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각없는 통일론은 엄단한다'고 입장을 밝힌다.

7.4 공동성명
이런 장면을 포착하여 김성환 화백은 그해 7월 10일자 고바우영감에서 '통일'이라는 연이 올라가는 모습을 즐거워하다 정부의 '지각없는 통일론 엄단' 발표에 어리둥절해 하는 고바우영감을 등장시키기도 하였다.

통일논의에 대한 민간 차원의 희망사항이 제대로 꽃도 피지 못하고 정부의 엄단 의지로 사그라지긴 했지만 당시 7.4. 공동성명은 국민들을 신문만 들면 남북대화 기사에 눈을 고정하게 하였고, TV와 라디오를 켜면 남북대화 뉴스만을 찾게 하였다. 그해 7월에는 긴 장마로 홍수가 잇달아 중앙재해대책본부가 발표한 7월 6일 새벽까지 사망자수는 10명, 실종 2명, 부상 17명 등 피해가 제법 컸지만, 수해 관련 기사는 남북대화 기사에 밀리고 있었다. 그런 국민들의 마음을 김성환 화백은 성명 발표 이틀 뒤에 게재한 고바우영감을 통해 표현한다.

7.4 공동성명
첫 칸에서 고바우영감이 TV와 라디오를 다락에 바쁘게 감추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칸에선 신문마저 TV와 라디오를 숨겼던 다락문을 열고 감춘다. 세 번째 칸에 등장한 고바우영감의 부인이 방안을 바쁘게 두리번거린다. 그러면서 부인은 고바우에게 "아니 신문과 라디오가 어디 있어요?"하고 묻는다. 이 질문에 고바우는 천연덕스럽게 "몰라!"라고 말한다. 물론 세 번째 칸의 주인공은 부인이기에 고바우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그의 말만 '말풍선'에 담겨 나온다. 네 번째 칸에서 고바우는 이마의 송글 거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마루에 앉아 "흐유! 남북문제 때문에 저녁 굶을 뻔했군"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의 부인은 라디오와 신문 찾기를 포기하고 "할 수 없군요. 저녁밥이나 지어야"하며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부엌을 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였다는 단면이다. 김 화백은 공동성명 발표 당일에는 목욕탕을 무대로 남북대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보여준 바 있다. 여기서 그는 남탕 손님 대표로 나서 TV 쟁탈전을 펼치는데, 여성대표에게 져서 TV를 통해 10시 중대발표를 시청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7.4 공동성명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 시사만화로 보는 시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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