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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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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재인 정부가 ‘한국형 뉴딜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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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7 00:19:21 작성자 : naver - ***
등교 시간 딸아이는 아침마다 ‘마스크’ 챙기는 걸 까먹곤 한다. 재빠르게 돌아 들어가,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 아이한테 “답답하면 사람 없는데서 마스크 잠깐씩 내리고 심호흡 한 번씩 해” 말한다. “사람 없는 데가 거의 없는데...” 아이는 읊조린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낀 채로 생활하는 건 얼마나 갑갑한 일인가. 언제쯤 마스크 없는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을 쉰다. 영화 같다. 방독면을 낀 채로 살 수밖에 없는 미래세상 ─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가 한 두 편이 아니지만,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도 몰랐다. 방독면까지는 아니니까 다행인 걸까. 방독면을 써야 하는 미래가 갑자기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알면서도 방치한 건 아닐까. 미루고 타협하다 이 지경에 이른 건 아니고?

코로나의 발생원인에 대해, 나는 두더지 오락기의 두더지처럼 재차 대답한다. “그건 ‘환경’의 역습이야, 자연의 복수야” 라고. ‘박쥐’니 ‘박쥐고기’니 얘기는 들었지만, 내가 보기에 박쥐는 그저 자연의 대리, 환경의 대표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박쥐는 목 놓아 부르짖는 대신 ‘조용한 웅변’을 선택했다. “인간들이여, 이제 그만!” ─ 박쥐는 ‘코로나’라는 언어로 소리치고 있다. 물론 언어라기엔 아주 처참하다. 오늘만 해도 전 세계 확진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섰고, 1%만 잡아도 이중 2천 명 정도가 사망할 것이니, 언어라기보다는 ‘공격’이다.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지구침공’인 셈. 인간의 침략은 대체로 권력과 욕망에 기인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자연계와 유기 시스템 상의 모든 공격은 대체로 자기방어를 이유로 한다. 다시 말해, 지금 자연은 자기 생존을 위해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론이 허술하고 성급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전 지구적 환경파괴와 기후변화가 갖은 바이러스의 주요 변수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감기의 원인이 ‘감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면역력’에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이자 여러 가지 환경 의제에 종사하는 의사 우석균은 녹색평론 172호에서 “이 역병들은 자본주의적 농·축산업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토지이용이 환경을 파괴하여 인류가 이전에 접하지 못하던, 자연에 남아 있어야 할 동물들의 바이러스를 직접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역병들이다.”라고 썼다. 이 견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도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전파되자 스페인, 영국, 독일, 일본, 인도네시아, 노르웨이 등 여러 국가와 연구진들이 공동연구를 수행했는데, 바이러스 전파가 인간의 산림파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코로나가 민생경제에 시커먼 망조를 드리우고 있다. 거리마다 폐업하는 가게를 흔하게 볼 수 있고, 보도를 보면 항공, 호텔 같은 문화레저 산업에서부터 대대적인 해고와 감원이 이뤄지는 분위기다. 마스크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 수준이 아닌, ‘먹고 사는 게 불가능한’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코로나 방역이 가장 우수한 한국의 사정은 무척 양호한 편이지만, 다른 대부분의 나라가 전대미문의 ‘재난경제’로 들어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실업자수가 20프로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거의 ‘대공황’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은 올 초 경기부양을 위한 27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법’을 가결한 바 있는데, 2차 부양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이런 부양정책 효과가 점차 떨어질 것을 우려하면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또한 최근 160조 규모의 ‘한국형 뉴딜정책’을 내놓았다. 이 정책의 핵심은 ‘디지털’과 ‘그린(기후환경)’이라고 하며 19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코로나 이후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기 위한 향후 5년간의 프로세스라고 한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 두 가지 비판이 불거졌는데 첫째는 ‘뉴딜’이라고 하면서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 둘째는 너무 듬성듬성하여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오늘 아침 뉴스공장에서 위와 같은 두 가지 비판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는데,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16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것은 적어도 ‘규모’ 면에서는 새롭다고 했으며, ‘그린’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봤을 때 한국은 선발도 아니고 후발도 아닌 ‘교량국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정책의 미비한 곳은 차차 채워지고 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을 믿는 입장에서 ‘한국형 뉴딜정책’의 중요한 허점을 짚어두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디지털’과 ‘그린’이 서로 상충하는 가치라는 점이다. 요컨대 “‘쿠팡’이 잘될수록 지역경제는 망해가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거래로 대표될 수 있는 디지털 경제의 득세가 승자독식으로 귀결되는 동시에 지역상권을 망가뜨릴 것으로 보는데 있어, 나는 주저함이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또한 많은 일자리를 없애버린다. 패스트푸드점, 은행, 마트, 제조공장 ... 등 많은 현장에서 소위 ‘가벼운AI’ 몇 기가 ‘사람’ 여럿을 대체하는 풍경은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손님이 없는 거리, 일자리가 사라진 일터를 연출할 것이다. 이런 곳 어디에서 돈이 나올까. 돈은 어디로 흘러갈까. 중산층이 무너질 것이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들, 돈이 너무 없는 사람들 ─ 이렇게 디지털 경제는 이 세계를 단출한 ‘계급사회’로 진입시키는 치트키일 수 있다.

디지털 무산계급의 탄생은 그자체로 환경문제이며 그자체로 ‘그린’과 위배된다. 이것을 논증하기가 구차하게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굳이 말해 보자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겐 ‘지켜야 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줄일 수 있다. 집이 없고, 땅 한 평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자연’이니 ‘환경’이니 ‘국토’니 하는 것들은 적잖이 허황되게 들리기 마련이다. 그나마 ‘자식’에게 ‘미래’를 주기 위해 환경문제에 주목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그마저도 ‘초저출산’과 ‘인구절벽’이 대신 답하고 있지 않은가. 그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그린정책에 얼마큼 동의할까. “그린 대신 ‘일자리’를!”, “그린 대신 ‘생업’을!” 주장할 때 정부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디지털을 줄일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디지털은 그린을 좀먹거나 파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가 디지털과 그린을 함께 내건 것이 매우 의아하다. 어디에서 헛다리를 짚은 것일까. 혹은 서로 모순적인 테제를 한 데 묶을 수 있는 ‘묘수’라도 찾아낸 것일까. 헛다리를 짚었다면 아마도 주류경제학이 주창하는 ‘성장론’의 논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성장론이 긴요한 역할을 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거인증’이나 ‘거대증’이 하나의 ‘병(病)’이듯 경제라는 유기체 또한 성장률 제로에 들어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자연’을 거부하고 계속 성장하기를 원할 경우, 그런 ‘비만경제’는 ‘순환’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과잉생산 >과잉소비 >낭비와 환경파괴의 원환(圓環)을 고집하는 성장주의는 기본적으로 ‘그린’의 반대편에 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단순히 좋은 정책 몇 개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할 수는 없을 정도로 사태가 크고 엄중하다는 뜻이다. 반성이 필요하며 그 반성은 문명사적인 전환에 준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혜’에 대해 “마치 눈앞에서 독뱀을 마주친 것 같이” 라고 J.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 바 있다. 뱀을 마딱드렸을 때 거기엔 ‘피해야겠다’는 결딴이나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말조차 필요치 않으며 다만 ‘행동’만이 존재한다. 참된 지혜는 이론적 탐색에 있기보다 가장 단순한 행동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현정부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데 있어 ‘바로앞’에서 배웠으면 한다. 바로 앞? 바로 앞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하고 경제적 타격이 심화되어갈 즈음, 한국정부는 무슨 일을 했던가? 그렇다. 10조원이 넘는 ‘재난지원금’을 풀었다. 경기도의 경우 이 지원금으로 전년도 대비 카드 매출이 11.2% 올랐고, 지급 22주차에는 120%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난 1차 재난지원금은 죽어가는 경제에 소생술 역할을 했고, 그 효과는 매우 가시적이고 확실했다. 하지만 이 효과는 일시적인 것이다. 일시적이기 때문에 2차 3차 4차 지원금이 있어야 한다? 그걸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다시피 지난 재난지원금은 중요한 단서조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역 내’에서 ‘3개월 안’에 다 써야 한다는 것. 나는 이 두 조건이 애초부터 재난지원금의 성공을 담지했다고 본다. 재난지원금은 마치 지역화폐와도 같았고 특히 오스트리아 뵈르글에서 시도된 적 있는 ‘감가화폐(減價貨幣)’와도 유사했다. 『1932년 경제공황 여파로 심각한 불황 속에서 실업자가 넘치고 상거래는 저조하고 도시재정은 파탄 상태에 빠져 음울한 분위기였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명한 결단을 내린 시장이 있었는데, 그는 공식적인 화폐의 부족 때문에 지역민의 삶이 피폐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그는 시의회의 협력을 얻어 ‘노동증서’라는 이름의 지역화폐를 만들어 공무원의 봉급이나 각종 공공사업비로 지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화폐는 특이하게도 시간이 경과하면 가치가 감소되도록 고안되어, 화폐 소지자는 매달 초에 액면가의 1퍼센트에 해당되는 스탬프를 사서 붙여야 했다. 따라서 오래 지니고 있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화폐는 신속히 순환하고, 소비를 촉진하고, 빠른 경제회복을 가능하게 했다.』 (김종철, 한겨레 2010.09.13.) 다시 말해 감가화폐는 ‘화폐’가 가진 본질적인 기능에만 집중한 진정한 화폐였던 셈이다. 재원지원금과 꼭 닮아 있지 않은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일회성 재난지원금으로는 목전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난지원금을 ‘복지정책’으로 묶어두는 한 한계가 자명하며 적극적인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인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도 “생산은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소비할 층이 얇아지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제도를 주장한 것은 빌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명실공히 ‘자본’ 자체랄 수도 있는 인물들이 먼저였다. 이대로 코로나 시대가 심화될 경우 ‘자본주의’의 붕괴가 자명하다 것이다. 소비가 극한으로 줄어들면 생산 또한 마찬가지가 되고 그와 동시에 일자리 또한 점멸할 수 있기에.

나는 문재인 정부가 ‘뉴딜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싸한 ‘아이템’ 몇 개로 이런 미증유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민간의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도록 채비하고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일, 국회의 일이다. 코로나 시대, “이제 그만”이라고 소리치며 전인류를 공격하고 있는 자연의 시침은 분명 전자(前者)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 말란 것이다. 하지 말 것을 하지 말란 것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걸 알기 위해 무엇이 괴물을 만들어냈는지를 곧이곧대로 물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환경을 파괴했고 생태계를 교란시켰으며 더 많은 바이러스 노출을 가져왔는가. 무엇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며 풀뿌리경제를 망하게 하는가. 정부는 괴물을 막는 일에 먼저 신경 쓰길 바란다. 그러면 경제는 시나브로 살아난다. 그 ‘살아남’은 성장과는 차원이 다른 ‘생동(生動)’일 것이다. 성장, 성공, 그럴싸한 삶... 이런 것이 ‘생존’ 자체 보다 우위에 있을 순 없다. 삶이 있어야 ‘좋은’ 삶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자연이 코로나를 통해 자기의 생존을 주장하고 있듯, 우리 인간 또한 생존 자체를 일단 신경 써야 할 판이다. 곁가지들을 버리고 생존, 지속가능 같은 절대적 가치를 등 뒤에 놓아야 한다. 그랬을 때, 진짜 지혜가 나온다. 갑자기 독뱀을 만났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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