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웹사이트는 제19대 대통령 임기 종료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이관받아 서비스하는 대통령기록물입니다. 자료의 열람만 가능하며 수정 · 추가 · 삭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하여 개인의 정보를 보호받기 원하시는 분은 관련 내용(요청자, 요청내용, 연락처, 글위치)을 대통령 웹기록물 담당자(044-211-2253)에게 요청해 주시면 신속히 검토하여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웹사이트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대통령기록관에서 보존·서비스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입니다. This Website is the Presidential Records maintained and serviced by the Presidential Archives of Korea to ensure the people's right to know.
훌쩍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너무도 뜻밖이며 또한 그의 죽음 뒤에 따라붙는 '성추행'
꼬리표가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말 그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처럼 두 얼굴의
사람이었을까. 그토록 오랜 기간 - 소위 피해자라는 여성에 대한 변호사 한 사람의 '자료 수집'에 의하면-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거의 '성추행' 수준으로 점철 되었다면, 세 번이나 서울 시장에 당선되어 시장직을
수행할 동안에 그렇게도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몰랐을까. 위력에 의해 그동안 덮혀 있었으며
전보조차도 시장이 동의해 주지 않아 못했다고 한다.
이게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일까. 박 시장이 마라톤에 참가할 때 그 여비서를 새벽 같이 불러내어 너가
나와야 내 기록이 오를 것이라든가, 혈압을 체크할 때 그 비서를 보고 너가 옆에 있으면 내 혈압이 더
오를 것 같다든가, 이런 말들이란 과연 '성추행' 범주에 들 것인지도 의심스럽거니와, 그런 말
정도는 이현령비현령의 일상의 말이 아닐까.
그리고 전보에 동의하지 않아 비서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하는 데, 이 법치주의 국가에서 적법한 절차를 따라
하는 소청을 누가 거부한단 말인가. 어떤 여자 국회의원 한 사람은 '위력' 운운하였다. 한 사람이 그 직을
떠나고 싶어하는 데 대해 아마도 '달래고' '권유'할 수는 있어도 한시반시도 더 있을 수 없다는 사람을
기어이 잡을 '위력'은 서울시장이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없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 아닐까.
지금 보면 모든 '인권'이란 이름이 붙은 단체, 혹은 '여성'이란 이름이 붙은 단체들은 아직 얼굴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어느 여성을 위해 '2차 가해' 운운하며 벌떼 같이. 참으로 벌떼 같이 나서고 있다.
얼굴을 알리면 닥쳐올 피해가 두려워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무슨 치사한 짓인가. 박시장을 고소한 그 용기는
어디로 가고 이름도 얼굴도 안 밝히고 계속 뒤에 숨어서 사태의 추이만 지켜보려는 것이냐. 고소한 내용을
박시장이 저질렀다는 악행을 당신은 거짓없이 세상에 밝혀라. 그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이 싯점에서 나는 세 가지 관점을 가진다.
첫째, 고 박원순 시장이 참으로 빼박의 위법한 '성추행'을 저지른 경우.
둘째, 전혀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한 몇 가지의 언행을 얽어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 고소한 경우.
세째, 고 박원순 시장이 피해자이며 그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
나는 우리 사회에서 '미투' 열풍이 불던 때, 이제 세상이 바로서는 구나 하였다. 그토록이나 오래 그토록이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면면을 보며 이들을 세상에 고발한 분들의 '용기'에 나는 박수를 보내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이 도를 넘고 있다. '여성'이름이 붙은 단체, '인권'이란 이름의 단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 되었다. 이번 박원순 시장을 고소한 이 여성도 역시나 그 '보호막' 뒤에 숨어서 온갖
이야기들을 쏟아 내고 있다. 나는 여성 무슨 단체나 인권 무슨 단체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부분을 잘 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터 여성단체나 인권단체가 들고나오면 정치권도 법조인도 주눅들어하고 언론도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여기에 박자를 맞추는 느낌이다. 그리고 다시 거기에 이어 편집증적인 사람들이 나와 이번의 경우 박원순에게 돌을 던진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한 거인을 '매장'시킨다. 평생을 '인권운동'을 해온 사람을, 3선의 서울 시장을,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변호사로 입신했던 이 분이 모은 재산은 커녕 빚만 7억 남긴 그 청렴한 행정가를 참으로 그처럼 무정하게 매장시켜도 좋은 것일까. 무덤 속의 박원순 시장도 너무 억울하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우리 사회가 얻는 실익이란 어떤 것일까.
박원순 시장은 이제 고인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뒤로하고 다른 세상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너무도 뜻밖이며 또한 그의 죽음 뒤에 따라붙는 '성추행'
꼬리표가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말 그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처럼 두 얼굴의
사람이었을까. 그토록 오랜 기간 - 소위 피해자라는 여성에 대한 변호사 한 사람의 '자료 수집'에 의하면-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거의 '성추행' 수준으로 점철 되었다면, 세 번이나 서울 시장에 당선되어 시장직을
수행할 동안에 그렇게도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몰랐을까. 위력에 의해 그동안 덮혀 있었으며
전보조차도 시장이 동의해 주지 않아 못했다고 한다.
이게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일까. 박 시장이 마라톤에 참가할 때 그 여비서를 새벽 같이 불러내어 너가
나와야 내 기록이 오를 것이라든가, 혈압을 체크할 때 그 비서를 보고 너가 옆에 있으면 내 혈압이 더
오를 것 같다든가, 이런 말들이란 과연 '성추행' 범주에 들 것인지도 의심스럽거니와, 그런 말
정도는 이현령비현령의 일상의 말이 아닐까.
그리고 전보에 동의하지 않아 비서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하는 데, 이 법치주의 국가에서 적법한 절차를 따라
하는 소청을 누가 거부한단 말인가. 어떤 여자 국회의원 한 사람은 '위력' 운운하였다. 한 사람이 그 직을
떠나고 싶어하는 데 대해 아마도 '달래고' '권유'할 수는 있어도 한시반시도 더 있을 수 없다는 사람을
기어이 잡을 '위력'은 서울시장이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없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 아닐까.
지금 보면 모든 '인권'이란 이름이 붙은 단체, 혹은 '여성'이란 이름이 붙은 단체들은 아직 얼굴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어느 여성을 위해 '2차 가해' 운운하며 벌떼 같이. 참으로 벌떼 같이 나서고 있다.
얼굴을 알리면 닥쳐올 피해가 두려워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무슨 치사한 짓인가. 박시장을 고소한 그 용기는
어디로 가고 이름도 얼굴도 안 밝히고 계속 뒤에 숨어서 사태의 추이만 지켜보려는 것이냐. 고소한 내용을
박시장이 저질렀다는 악행을 당신은 거짓없이 세상에 밝혀라. 그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이 싯점에서 나는 세 가지 관점을 가진다.
첫째, 고 박원순 시장이 참으로 빼박의 위법한 '성추행'을 저지른 경우.
둘째, 전혀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한 몇 가지의 언행을 얽어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 고소한 경우.
세째, 고 박원순 시장이 피해자이며 그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
나는 우리 사회에서 '미투' 열풍이 불던 때, 이제 세상이 바로서는 구나 하였다. 그토록이나 오래 그토록이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면면을 보며 이들을 세상에 고발한 분들의 '용기'에 나는 박수를 보내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이 도를 넘고 있다. '여성'이름이 붙은 단체, '인권'이란 이름의 단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 되었다. 이번 박원순 시장을 고소한 이 여성도 역시나 그 '보호막' 뒤에 숨어서 온갖
이야기들을 쏟아 내고 있다. 나는 여성 무슨 단체나 인권 무슨 단체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부분을 잘 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터 여성단체나 인권단체가 들고나오면 정치권도 법조인도 주눅들어하고 언론도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여기에 박자를 맞추는 느낌이다. 그리고 다시 거기에 이어 편집증적인 사람들이 나와 이번의 경우 박원순에게 돌을 던진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한 거인을 '매장'시킨다. 평생을 '인권운동'을 해온 사람을, 3선의 서울 시장을,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변호사로 입신했던 이 분이 모은 재산은 커녕 빚만 7억 남긴 그 청렴한 행정가를 참으로 그처럼 무정하게 매장시켜도 좋은 것일까. 무덤 속의 박원순 시장도 너무 억울하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우리 사회가 얻는 실익이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