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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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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대신 생존을

추천 : 13 vs 비추천 : 1
2020-07-22 10:09:20 작성자 : naver - ***
마스크의 시대

등교 시간 딸아이는 아침마다 ‘마스크’ 챙기는 걸 까먹곤 한다. 재빠르게 돌아 들어가,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 아이한테 “답답하면 사람 없는데서 마스크 잠깐씩 내리고 심호흡 한 번씩 해” 말한다. “사람 없는 데가 거의 없는데...” 아이는 읊조린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낀 채로 생활하는 건 얼마나 갑갑한 일인가. 언제쯤 마스크 없는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을 쉰다. 영화 같다. 방독면을 낀 채로 살 수밖에 없는 미래세상 ─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가 한 두 편이 아니지만,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도 몰랐다. 방독면까지는 아니니까 다행인 걸까. 방독면의 시대가 갑자기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알면서도 방치한 건 아닐까. 미루고 타협하다 이 지경에 이른 건 아니고?


전대미문의 '지구침공'

코로나의 발생원인에 대해, 나는 두더지 오락기의 두더지처럼 재차 대답한다. “이건 ‘환경’의 역습이야, 자연의 복수야” 라고. ‘박쥐’니 ‘박쥐고기’니 얘기는 들었지만, 내가 보기에 박쥐는 그저 자연의 대리, 환경의 대표일 뿐이다. 박쥐는 목 놓아 부르짖는 대신 ‘조용한 웅변’을 선택했다. “인간들이여, 이제 그만!” ─ 박쥐는 ‘코로나’라는 언어로 소리치고 있다. 물론 언어라기엔 아주 처참하다. 오늘만 해도 전 세계 확진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섰고, 이중 1%만 잡아도 2천 명 정도가 사망할 것이니, 언어라기보다는 ‘공격’이다. 전대미문의 ‘지구침공’인 셈. 인간의 침략은 대체로 권력과 욕망에 기인하지만 자연과 유기 시스템 상의 공격은 대체로 자기방어를 이유로 한다. 다시 말해, 지금 자연은 자기 생존을 위해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 보스는 '기후변화'!

이런 이론이 허술하고 성급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전 지구적 환경파괴와 기후변화가 갖은 바이러스의 주요 변수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감기의 원인이 ‘감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면역력’에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이자 여러 가지 환경 의제에 종사하는 의사 우석균은 녹색평론 172호에서 “이 역병들은 자본주의적 농·축산업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토지이용이 환경을 파괴하여 인류가 이전에 접하지 못하던, 자연에 남아 있어야 할 동물들의 바이러스를 직접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역병들이다.”라고 썼다. 이 견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도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전파되자 스페인, 영국, 독일, 일본, 인도네시아, 노르웨이 등 여러 국가와 연구진들이 공동연구를 수행했는데, 바이러스 전파가 인간의 산림파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공황, 재난경제의 시작

코로나가 민생경제에 시커먼 망조를 드리우고 있다. 거리마다 폐업하는 가게를 흔하게 볼 수 있고, 보도를 보면 항공, 호텔 같은 문화레저 산업에서부터 대대적인 해고와 감원이 이뤄지는 분위기다. 마스크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 수준이 아닌, ‘먹고 사는 게 불가능한’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코로나 방역이 가장 우수한 한국의 사정은 무척 양호한 편이지만, 다른 대부분의 나라가 전대미문의 ‘재난경제’로 들어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실업자수가 20프로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거의 ‘대공황’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은 올 초 경기부양을 위한 27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법’을 가결한 바 있는데, 2차 부양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이런 부양정책 효과가 점차 떨어질 것을 우려하면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형 뉴딜정책 내놓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또한 최근 160조 규모의 ‘한국형 뉴딜정책’을 내놓았다. 이 정책의 핵심은 ‘디지털’과 ‘그린(기후환경)’이라고 하며 19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코로나 이후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기 위한 향후 5년간의 프로세스라고 한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 두 가지 비판이 불거졌는데 첫째는 ‘뉴딜’이라고 하면서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 둘째는 너무 듬성듬성하여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오늘 아침 <뉴스공장>에서 위와 같은 두 가지 비판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16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것은 적어도 ‘규모’ 면에서는 새롭다고 했으며, ‘그린’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봤을 때 한국은 선발도 아니고 후발도 아닌 ‘교량국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아, 정책의 미비한 곳은 차차 채워지고 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계급사회로의 치트키?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을 믿는 입장에서 ‘한국형 뉴딜정책’의 중요한 허점을 짚어두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디지털’과 ‘그린’이 서로 상충하는 가치라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쿠팡’이 잘될수록 지역경제는 망해가기 때문”이다. 플랫폼 비지니스로 대표될 수 있는 디지털 경제의 득세가 승자독식으로 귀결되는 동시에 지역상권을 망가뜨릴 것으로 보는데 있어, 나는 주저함이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또한 많은 일자리를 없애버린다. 패스트푸드점, 은행, 마트, 제조공장 ... 등 많은 현장에서 소위 ‘가벼운AI’ 몇 기가 ‘사람’ 여럿을 대체하는 풍경은 더욱더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손님이 없는 거리, 일자리가 사라진 일터를 연출할 것이다. 이런 곳 어디에서 돈이 나올까. 돈은 어디로 흘러갈까. 중산층이 무너질 것이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들, 돈이 너무 없는 사람들 ─ 이렇게 디지털 경제는 이 세계를 단출한 ‘계급사회’로 진입시키는 치트키일 수 있다.


배고픈 그린(green) 정책?

디지털 무산계급의 탄생은 그자체로 환경문제이며 그자체로 ‘그린’과 위배된다. 이것을 논증하기가 구차하게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굳이 말해 보자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겐 ‘지켜야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집이 없고, 땅 한 평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자연’이니 ‘환경’니 하는 것들은 적잖이 허황되게 들리기 마련이다. 그나마 자식에게 ‘미래’를 주기 위해 환경문제에 주목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그마저도 ‘초저출산’과 ‘인구절벽’이 대신 답하고 있지 않은가. 그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그린정책에 얼마큼 동의할까. “그린 대신 ‘일자리’를!”, “그린 대신 ‘생업’을!” 주장할 때 정부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디지털을 줄일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성장은 그린의 적

디지털은 그린을 좀먹거나 파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가 디지털과 그린을 함께 내건 것이 매우 의아하다. 어디에서 헛다리를 짚은 것일까. 혹은 서로 모순적인 테제를 한 데 묶을 수 있는 ‘묘수’라도 찾아낸 것일까. 헛다리를 짚었다면 아마도 주류경제학이 주창하는 ‘성장론’의 논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성장론이 긴요한 역할을 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거인증’이나 ‘거대증’이 하나의 ‘병(病)’이듯 경제라는 유기체 또한 성장률 제로에 들어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자연’을 거부하고 계속 성장하기를 원할 경우, 그런 ‘비만경제’는 ‘순환’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과잉생산 >과잉소비 >낭비와 환경파괴의 원환(圓環)을 고집하는 성장주의는 기본적으로 ‘그린’의 반대편에 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사태가 크고 엄중하다는 뜻이다. 반성이 필요하며 그 반성은 문명사적인 전환에 준하는 것이어야 한다.


재난지원금으로부터 배우기

‘지혜’에 대해 “마치 눈앞에서 독뱀을 마주친 것 같이” 라고 J.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 바 있다. 뱀을 마딱드렸을 때 거기엔 ‘피해야겠다’는 결딴이나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말조차 필요치 않으며 다만 ‘행동’만이 존재한다. 참된 지혜는 이론적 탐색에 있기보다 가장 단순한 행동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현정부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데 있어 ‘바로 앞’에서 배웠으면 한다. 바로 앞? 바로 앞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하고 경제적 타격이 심화되어갈 즈음, 한국정부는 무슨 일을 했던가? 그렇다. 10조원이 넘는 ‘재난지원금’을 풀었다. 경기도의 경우 이 지원금으로 전년도 대비 카드 매출이 11.2% 올랐고, 지급 22주차에는 120%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난 1차 재난지원금은 죽어가는 경제에 소생술 역할을 했고, 그 효과는 매우 가시적이고 확실했다. 하지만 이 효과는 일시적인 것이다. 일시적이기 때문에 2차 3차 4차 지원금이 있어야 한다? 그걸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재난지원금과 대안화폐

아다시피 지난 재난지원금은 중요한 단서조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역 내’에서 ‘3개월 안’에 다 써야 한다는 것. 나는 이 두 조건이 애초부터 재난지원금의 성공을 담지했다고 본다. 재난지원금은 마치 지역화폐와도 같았고 특히 오스트리아 뵈르글에서 시도된 적 있는 ‘감가화폐(減價貨幣)’와도 유사했다. 『1932년 경제공황 여파로 심각한 불황 속에서 실업자가 넘치고 상거래는 저조하고 도시재정은 파탄 상태에 빠져 음울한 분위기였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명한 결단을 내린 시장이 있었는데, 그는 공식적인 화폐의 부족 때문에 지역민의 삶이 피폐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그는 시의회의 협력을 얻어 ‘노동증서’라는 이름의 지역화폐를 만들어 공무원의 봉급이나 각종 공공사업비로 지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화폐는 특이하게도 시간이 경과하면 가치가 감소되도록 고안되어, 화폐 소지자는 매달 초에 액면가의 1퍼센트에 해당되는 스탬프를 사서 붙여야 했다. 따라서 오래 지니고 있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화폐는 신속히 순환하고, 소비를 촉진하고, 빠른 경제회복을 가능하게 했다.』 (김종철, 한겨레 2010.09.13.) 다시 말해 감가화폐는 ‘화폐’가 가진 본질적인 기능에만 화폐였던 셈이다. 지난 재원지원금과 꼭 닮아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 붕괴를 불러오는 코로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일회성 재난지원금으로는 목전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난지원금을 ‘복지정책’으로 묶어두는 한 한계가 자명하며 적극적인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인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도 “생산은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소비할 층이 얇아지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제도를 주장한 것은 빌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명실공히 ‘자본’ 자체랄 수도 있는 인물들이 먼저였다. 이대로 코로나 시대가 심화될 경우 ‘자본주의’의 붕괴가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소비가 극한으로 줄어들면 생산 또한 마찬가지가 되고 그와 동시에 일자리 또한 점멸할 수 있기에.


하지 말아야 할 일 하지 못하게 하기

나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한국형 뉴딜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싸한 ‘아이템’ 몇 개로 이런 미증유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민간의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도록 채비하고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그러하다. 코로나 시대, “이제 그만”이라고 소리치며 전인류를 공격하고 있는 자연의 시침은 분명 전자(前者)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 말란 것이다. 하지 말 것을 하지 말란 것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걸 알기 위해 무엇이 괴물을 만들어냈는지를 곧이곧대로 물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환경을 파괴했고 생태계를 교란시켰으며 더 많은 바이러스 노출을 가져왔는가. 무엇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며 풀뿌리경제를 망하게 하는가. 디지털과 그린이 똑같이 필연적인 흐름이라면 두 철학이 부딪히는 곳마다 확고한 '문턱' 내지 '인터락(interlock)'을 고안할 필요성이 있다. 융합 보다는 배제의 원리, 억제의 원리가 필요한 것이다. 일예로, 지난 번 재난지원금을 <이케아> 매장에서도 쓸 수 있게 한 것은 필수적인 '문턱'을 훼손한 것으로 정책상의 큰 오점이었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어정쩡한 '문턱' 가지고는 곤란하다.


괴물 되지 않기

안마의자를 만드는 <바디프렌드>라는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연매출이 4천억 원이 넘으며, 기업가치가 2~3조에 이르는 회사로 '안마의자'로 유명하다. 헌데 이 기업이 "자사의 안마의자가 아이들 키 크는데 도움이 된다"는 허위광고를 하여 최근 공정위로터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헌데 그 과징금액이 겨우 2천2백 원에 불과하다. 이 회사가 허위광고로 벌어들인 금액은 광고기간 6개월만 대강 계산해도 수백억 원에 달하는데, 과징금이 그 1%도 되지 않는다면 어이없는 일 아닌가. 대체 공정거래위원회는 왜 있는 것일까. 사기를 쳐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있는 것인가? 삼성 이재용이 아버지 이건희로부터 삼성을 물려받기 위해 저지른 수조원대의 회계조작과 주가조작에 대해 공정위가 보여준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면 얼마나 "비지니스 프렌들리 한 지"를 알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 사정기관이 확실범을 잡지 않는 것, 사기를 쳐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비지니스 프렌들리가 아니다. "'줄'을 서겠다"는 식 "나중에 잘 좀 봐달라"는 식의 흔한 처세술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범죄 프렌들리'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의 핵심기능을 저버린다는 것은 그자체로 범죄이며, 스스로 '괴물'이 되겠다는 뜻이다.


괴물 앞에 담대하기

정부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 괴물을 막아세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기에. 적폐청산과 사법개혁 및 언론개혁은 구시대의 괴물을 처리하는 과정이기에 '한국형 뉴딜정책'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의제이다. 무엇보다 성장이라는 유구한 자본의 테제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생존' 자체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생존에 천착한다는 것은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앞선 '배제의 원리', '억제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은 그 자체로 자생적이다. 마치 정부가 대지에 물(예산)을 뿌리는 전지전능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괴물의 촉수를 끊고, 그 마수를 잡아챌 때 경제는 자연히 살아나기 때문. 같은 맥락에서 민주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해 온 소위 '사회적 경제', '협동경제' 또한 그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곤란하다. 괴물을 그대로 둔 채로, 아무리 약자들을 지원한다 한들 대부분 도로아미타불에 그칠 것이다. 삼성 같이 ‘큰’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얻는 것 자체는 좋지만, 한 기업이 막강한 자본으로 자동차, 식품, 유통까지 점령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고용을 늘리고 기술을 혁신하고 사회사업을 펼치는 제반의 긍정효과 보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과독점이 불러오는 부정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하청사업장은 끊임없는 단가압박과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이고, 골목상권은 더욱더 메마를 것이며, 기초산업은 더욱 더 붕괴될 것이다.


성장 대신 생존을

정부가 독점자본과 확실한 ‘척’을 질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그린'의 시대는 도래하지 않는다. 그린의 요체는 땅, 집, 의료, 교육, 망 산업 등 많은 공공재를 괴물의 마수, 즉 자본의 마수로부터 지켜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확실히 만족을 모르는 이데올로기이다. 이 괴물 앞을 막아섰을 때 남은 것은 한껏 순수해진 '생존'이다. 안 그래도 자연이 코로나를 통해 자기의 생존을 주장하고 있는 지금, 우리 인간 또한 생존 자체를 일단 신경 써야 할 판 아닌가. 곁가지들을 버리고 생존, 지속가능, 공존(共存) 같은 절대적 가치를 등 뒤에 놓아야 한다. 배수진을 치듯 확고해야 한다. 그랬을 때, 진짜 지혜가 나온다. 갑자기 독뱀을 만났을 때처럼. 정부가 원래 해야 할 일, 다시 말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충실히 다한다면 일단 그것으로 족하다. 경제는 자연히 살아나게 된다. 이때 '살아남'은 성장과는 차원이 다른 '생동(生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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