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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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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2 10:57:22 작성자 : naver - ***
춘추시대에 송(宋)나라는 은나라의 후손으로서의 자부심과더불어 양공의 치세 무렵 국력이 강성해지자 , 그러한 상황에
고무된 양공은 내친 김에 패자(覇者)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였습니다.

패자란 제후국들을 소집하여 회맹을 여는 제후를 가리키는데,
송 양공은 패자가 되고자 노력했으나 신흥강국 초나라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두 나라는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홍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가 대치할 무렵이었습니다.

송나라가 먼저 진을 치고 기다릴 무렵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기
시작하자 공자 목이가 즉시 공격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양공은
“상대가 미처 준비를 하기 전에 기습하는 것은 인(仁)의 군대가 할일이 아니다.”
하며 공격을 반대했습니다.

이어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 진을 치기 시작하자
다시 공자 목이가 공격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양공은 같은 이유로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초나라 군대가 전열을 갖추자 그때서야 공격 명령을 하달했고,
병력이 약한 송나라는 대패하고 말았으며
양공 또한 부상을 입은 후 병세가 악화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를 가리켜 송양지인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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