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기본검사는 건강관리협회에서 하고, 상복부는 전남대학교 병원 외과에서 진료를 보고 있었는데 이곳저곳 문의해보니
화순 전남대 병원이라는 곳에 내분비 대사 내과라는 곳이 있으니 그 곳으로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로 제 상황을 설명하니 화순 전남대병원에서 빨리 와서 접수하라하여 검사하러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골감소증말고는 디스크 쪽에는 문제가 없는데 왜 이런지 이상하다 하시면서 이것저것 검사해주셨습니다. 며칠 후에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 몸에 있는 기본 영양소중에 비타민 D라는 영양소의 수치가 3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동안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설마 기본 영양소가 없을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보조제 처방을 받고 몇 년간 음식 조절하다보니 몸에 염증은 사라져 갔습니다. 이렇게 헤매는 시간중에 한번은 전기 밥솥에 밥을 앉혀놓고 힘들어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어져서 정신을 놓았다 105시간만에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쓰던 전기 밥솥이 조금 오래되서 취사 완료 후 보온 105시간과 함께 밥솥안에는 누런밥에 물기가 고여 있더라구요. 이제는 지난일이고 추억이라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처방해주신 보조제와 음식 조절 덕분에 이제는 면역이 올라가서 살만합니다. 아직까지 들리는 환청과 스피커와 벽면을 통해서 들리는 전기음등 다른 사람은 이해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다보니 지금도 일용직에서 일 할 수 있을 때는 일하고 힘들면 쉬고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른 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경력도 능력도 변변치 않기 때문에 취업지원센터 도움을 받으며...그리고 일용직으로 다니며 살아도 이제는 하루하루가 살아가기 벅차다는 생각보단 즐겁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듭니다. 제가 정신이 피폐해져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시간동안 저는 저의 몸에 대하여 다른 사람보단 더 많은 공부를 하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잠깐 진료를 받았던 어떤 의사 선생님께서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아플때가 있는데 자네는 그 때가 지금일 뿐이라는 말을 건내주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좋은 정책과 고마우신 선생님을 만나 도움을 받았었는데 결실이 없어서 죄송 할 뿐입니다. 대한민국 청년 실업자중에는 아마도 저와 같은 상황과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취업률을 떠나서 청년 실업자들을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최근에 초밥을 배우러 갔는데 그 곳 실장님께서도 내 친구중에 빵일 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 온 이상은 개가 되어야 한다. 그러시더라구요 물론 저에게는 그 말을 증명 할 수 있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렇게 얼마 못 버티고 나왔습니다.
*몇 일전에 연금 내역을 확인해보니 정말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공제한 금액과 실제로 연금 공단에 들어간 금액이 다르다는 겁니다. 몇 년 일 한곳은 몇 달 일한 걸로 올라가 있고, 하루 11시간 12간정도 일하여 170만 이상 받으면 100만원이나 130만원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사대보험을 넣지 않아도 되니 월급에서 공제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많은 이유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합니다. 저도 이번에 내역을 확인해보니 어떤 사람들의 그 말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돈도 인맥도 백도 없고 이미 퇴사한 사업장이기에 실명을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지만 솔직히 대한민국 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국방의 의무는 다 하였기 때문에 정규직 보다는 일용직으로 더 오래 일을 하였어도 국민의 4대 의무는 알고 있습니다.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받는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국방 이외에 교육, 근로, 납세의 의무는 누구나 공평하고 균등하게 짊어져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저 또한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근로와 납세의 의무 이 두 가지는 저의 마음과 같지 않아 저에게는 결코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일용직이던 근로자던 납세라는 것은 사업주의 솔직함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통령님께 이런 저런 개인사를 하소연 하려고 이런 글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저는 꿋꿋하게 살아왔다는 자랑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곳 저곳 떠돌다보면..... 아프고 싶어서 아픈게 아닌데 때로는 아픈 사람이 잘못이라는 말이 와 닿을때도 있습니다. 제과 제빵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다들 그러시지는 않겠지만 제가 겪은 사단법인 제과 기능장이란 20대에 잠깐 들어 보았던 검사 동일체 보다도 더욱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체였습니다. 기능장님들 각자가 그 분야에서 최고 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장이라는 이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능장님들 중에서 위에 계신분이 찍으면 어떻게든지 내 보야 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증명 할 수 없으나 직접 겪었습니다. 기능장 집안 베이커리가 아니고 개인 베이커리에서 기술을 배우면 기능장이라는 시험에 합격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전부였습니다. 기능장이라는 단어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은 기술과 명성 그리고 덕이 살아 숨쉬는 곳이 아닌가 합니다. 기술이나 기능이란 분야를 범위를 한정시켜놓거나 어느 한 단에 특혜를 주었을 때에는 그 기술과 기능의 성장과 발전 또한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제과 기능장 집안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합격이고, 기능장 집안의 마음에 들면 합격 시켜준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기능장 라인 집안에서 이미 답안과 채점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답안과 체점 기준에 부합하게 제출하면 합격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기능장 집안 라인에서 배우지 못한 다른 사람은 아무리 인품과 기술력이 좋아도 불합격이란 말과 같지 않나 싶습니다. 덕장의 반열과 같다고 하는 기술과 명성과 그리고 덕이 살아 숨쉬는 ~~장이라는 시험을 산업인력공단에서 공정하게 볼 수 있다면 꼭 기능장 집이 아닌 개인 윈도우 베이커리에서 배웠더라도 그 동안 열심히 살아왔고, 기술력 있는 사람이라면 차별 없이 누구나 당연히 합격 할 수 있어야 되는 시험이 아닌가 합니다. 저 또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오게 되어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배움을 시작하고, 희망을 품고, 그 배움에서 꿈을 심고, 그 꿈을 키워나가는 많은 동생들에게는 더욱 공정한 제도에서 자격 시험을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 국정원에서 잡을 수 있으면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겠냐?” “ 수익아 지금 안지우면 너는 죽는다.” 보낼 수 있으면 보내보라는 환청 아닌 환청이 들립니다. 저는 다음에 혹시나 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일하러 갔을 때 아픈 사람을 쓰면 일이 안된다는 편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후회가 남지 않게 열심히 하고 깨끗하게 접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하게 이런 글을 보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헤메이던 몇 년이라는 시간동안 저에게는 개인적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국비지원 정책 덕분에 그 시간을 버티며 오늘도 인생 제 3막에 하루하루를 도전 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늦게 시작된 삶이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업장을 거치게 되더라도 도전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그리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 8년이라는 시간을 저에게는 긴 글이지만... 짧은 글에 담으려니 글쓰는게 변변치 못합니다. 두서 없는 글이라 읽기 힘드시더라도 일용직노동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님 바쁘실 텐데 이런 글 까지 보내드려서 죄송합니다. 대통령님과 정책 덕분에 꿋꿋이 지내온 나날들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근로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도 참여하여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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