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국 항공모함 비로자나불호가 싹 다 태우고 상해로 빠져버리는데”
“인도 왕이 대잠수함을 끌고 왔단다. 대잠수함이 있어서 우리 해군이 꼼짝도 못한단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대검 중수부장이 인도의 대잠수함을 탈취했다고 한다. 됐다. 이젠 끝났다”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대검 중수부장이 상해에 있는 비로자나불에서 미국에 긴급타진을 보내 비로자나불호로 핵폭탄을 날려달라고 요청했단다.”
“아유타국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날렸는데 인도 왕이 생일도로 항로를 수정해서 떨어 뜨렸단다. 싹 다 죽어버렸다. 생일도에 들어가는 배도 핵폭탄으로 싹 다 사라져 버렸단다.” 그러면서 대한제국은 강간제국이다 싹 다 강간해버렸다는 이야기와 함께 2019년 1월 중순부터 2019년 3월까지 제 방에서 강간당하는 음성만 들리는 겁니다.
“우리는 전부 나주 성모동산에 있는데 올 수 있으면 와바” “우리는 제과 기능장 협회에 모여 있는데 찾아 올 수 있으면 와바”
“젊었을 때에는 잘 되었는데 나이가 먹으니깐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아니야 이 정도면 우리는 잘하고 있는 거야.”
“수익아 너를 만나려고 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했겠니?”
“나는 정신병자만 만들려고 그랬는데 지가 죽어버렸는데 그게 죄야?”
“수익아 우리 집안만 만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니?”
다른 빵집에서 일하려고 이력서를 보내면…….“ 어 난데 지금 이력서 하나 들어 갔을 거야. 우리 집안 사정좀 봐줘.”
“이제 빵은 안만든다는데 음식 쪽에서 일 할 수 있게 풀어줘도 되는 거 아니여”
“우리 사조 집안이 얼마나 악랄한 집안인지 우리가 싹 다 보여줘야 겠다.”
“우리가 수익이를 빤스까지 벗겨서 외국으로 쫓아내어 버릴 수는 없을까?”
“수익아 이 음향기기가 어디껀줄 아니? 할리우드에서도 쓰는거다.”
“광원아…….”
“누구야……. 방금 누가 이름 말했어.”
“이정도면 정신병자가 되어야 하는데……. 참 이상하네 등등 엄청난 환청 같지 않은 환청을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수익아 할 수 있으면 해봐. 국정원에서 우리를 잡을 수 있는지 보자. “라는 말이 들립니다.
이상하게도 귓가에서 맴도는 것 말고도 노트북이나 방송 스피커에서도 지지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겁니다. 저는 잘 때 현관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잠을 잡니다. 한번은 위에 잠금장치가 있는지 모르고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하는 겁니다. 어쩌다가 귀신이 열쇠를 이용하여 현관문으로 들어오려 하였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019년 3월까지의 무수히 많은 내용 중에서 과하지 않은 내용만 간략하게 몇 글자 적어 드렸습니다. 제가 들은 내용을 있는 사실 그대로 전달하였다하여 죄를 짓는 것이면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 목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바르지 못한 내용을 전달한다면 바로 잡아야 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집에 누워있으면 전기음과 함께 죽어라 죽어라 자살해라 나같으면 자살하겠다. 여기서 나가면 우리 기능장들이 싹 다 죽여 버린다 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리기에 가끔은 위의 내용처럼 진짜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고 또 정보기관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금으로 움직이는 정보기관에서 선량한 시민을 이유없이 감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 명의 목소리에 음향효과, 전자음까지 더해지다보니 제가 찾을 수 는 없으나 정말 환청이 맞나 싶어서 이 글을 드립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 하에서 몇 년이라는 시달리다보니 정보기관에서 가끔 저를 한번씩 감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있나...살고있나 잘 살아가고 있나를 한번씩 봐주셨으면 합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누가 보아도 정상인데 갑자기 그리고 자꾸 염증이 퍼지고 뼈에 문제가 생기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하여 자꾸 사회라는 트랙에서 낙오하다보니 어떻게든지 무엇이라도 배워서 먹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습니다. 처음에 베이커리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4~5개월이 지나가는데 허벅지부터 척추까지 있던 골감소증이라는 것이 갑자기 골다골증으로 진행되고 백혈구 수치도 조금 불안정하여 다시 제가 살던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잔병을 떠나서 남자 나이 서른 중반에 골감소증-골다골증은 햇볕을 쬐면서 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쉬면서 햇볕 보다가 또 움직일만하면 다시 기능장님이 운영하시는 베이커리 빵집에서 도전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언제나 면접을 볼 때면 저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너는 아프니깐 기술을 배우려면 돈을 조금만 받아야 한다는 원장선생님 말에 한달에 130만원 받고 기능장님이 운영하시는 베이커리 가게에 두 달 정도 일하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팔과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현장 과장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제가 병원에 가야하니 여기서 일 할 사람 좀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베이커리 과장님이 웃으시면서 그러시더라구요 “ 아픈 사람이 죄인이다. 그리고 너 말고는 이렇게 일 할 사람이 없다. 너니깐 이렇게 하지 우린 못한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내용은 그 베이커리 사장님께서도 거의 1년이라는 시간동안 전화하셔서 너랑 한번 일해보고 싶다 너는 사장님하고 일해 볼 생각 없니? 물어 보시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가서 거의 6개월 만에 못 버티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서브큐에서 하는 세미나가 있는데 그 곳에 참석했습니다. 그 곳에서 그 베이커리 사장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세미나가 끝나고 저를 집에 까지 태워다 준다는 것입니다. 계속 사양하다 못 이겨 타고 왔는데 며칠 뒤에 이른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 사장님은 다 알고 왔다. 너가 돈도 없고 몸도 아프고 살기 힘드니깐 그런거 알고 있다. 사장님은 다 이해하니깐 솔직하게 말하자고 하시더군요 무슨 영문인지 짐작을 할 수 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세미나 있던 날 아침에 사장님이 엠블 베이커리에서 돈을 빼서 사장님 차 보조석에 놓아두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사장님차는 좋은차라서 앞 뒤 그리고 내부에도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으니 확인하면 그냥 안다는 겁니다. 저는 이제 까지 살면서 남의 물건에 욕심내며 살지 않았습니다. 계속 저는 아니라고 하니 우선 빵 잡아야 하니깐 간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몇 일 후에 제가다시 전화해서 지금 광주 지방경찰청가서 제가 직접 접수 한다고 했더니 사장님이 미안하다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이렇게 아프고 돈 없다는 이유에서 도둑으로 몰린적도 있었습니다. 이런한 내용들이 서민과 취약 계층이 겪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일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빵은 여러번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버티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해온 만큼은 해왔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는데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는 많이 부족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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