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폭정’과 한반도 평화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2020-06-23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결국 폭파했다. 무례하며 도발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상황이 힘들다고 판을 엎어버리는 것은 이 땅에 평화를 원하지 않는 자들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실망스럽지만 상황을 면밀하게 재점검할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 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서 보다 냉정하고 치밀해져야 한다. 일부 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북한은 처음부터 비핵화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섣부른 결론을 쏟아내면서 파탄을 기정사실로 만들고, 강대강으로 회귀하자는 선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정치에서 ‘약자의 폭정’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전형적 사례로 북한을 자주 거론한다. 국제정치도 힘이 지배하는 질서이므로 강대국이 약소국 위에 군림하는 것이 보통인데, 약자의 폭정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가능하다. 역사학자 찰스 암스트롱은 2013년의 저작인 ‘약자의 폭정: 북한과 전 세계, 1950-1992(Tyranny of the Weak: North Korean and the World, 1950-1992)’에서 북한이 과거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활용해서 강대국들을 상대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북한은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도 벼랑 끝 전술을 펼쳤다. 북한은 가진 것이 없다 보니 잃을 것이 없고, 벼랑 끝에서 생존을 건 싸움을 한다.
한국 역시 북한발 약자의 폭정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한국은 국민총생산 대비 40배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핵을 제외한 군사력에 있어서 압도적이다. 체제경쟁에서 이기고, 억지력이 제고되면 안정이 오고 평화가 올 줄 알았지만, 결과는 꼭 그렇지 않다. 벼랑 끝에서 절박한 체제생존을 해야 하는 북한은 핵무장까지 하면서 약자의 폭정의 위력을 키워왔다. 게다가 동북아는 지정학의 귀환과 한·미·일과 북·중·러의 냉전 잔재가 북한의 행동을 극대화하는 토양을 제공해왔다. 개번 머코맥 호주 국립대 교수는 저서에서 약자인 북한이 밀림의 습격자인 호랑이, 미국을 상대로 살기 위해 날카로운 바늘을 곧추세우는 고슴도치 전략을 펼친다고 말한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이 어려운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1990년대 초반 1차 핵위기 이후 한반도의 모든 문제가 핵 문제의 인질이 되었다는 점이다. 동북아의 평화 분위기 조성이나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북한이 핵에 집착하지 않고서도 생존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어려워졌다. 반대로, 핵 문제가 불거지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패턴이 고착화한 것이다. 한미는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면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북한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적대 정책을 포기하면 당연히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논리로 대응해왔다. 즉, 미국은 ‘선 핵폐기·후 보상’을 원하지만, 북한은 체제의 생존을 미국에 맡겨야 하는 도박에는 응할 수 없다. 불신구조로 말미암아 순서가 핵심 장애로 작동한다. 특히 먼저 핵 폐기를 했다가 몰락한 리비아 카다피의 운명을 목격한 이후에는 더 수용하기 어렵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지만, 핵 문제는 북미 간에 우선 풀어야 하는 선결문제라는 사실을 문재인 정부는 잘 알기 때문에 중재자를 자처했다. 판문점을 통해 싱가포르로, 평양에서 하노이로, 그리고 다시 판문점에서 스톡홀름으로 견인해왔다. 2018년 역사적인 평화프로세스는 남북한 모두에 새 희망과 기회를 제공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의 합의로 먼저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북한이 비핵화를 결단할 수 있게 하는 메커니즘이 실현될 가능성을 마련했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난관이 찾아왔다. 2019년 2월 말 하노이회담에서 결렬되었고, 이는 새로운 시도가 다시 과거의 패턴으로 회귀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한국을 믿고 많은 것을 양보했음에도 받은 것이 없는데, 미국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뿐 실제로는 선핵폐기론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쟁 중에도 협상은 하고, 적과의 협상이라도 주고받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해서는 안 되지만, 일방적으로 받기만 할 수 없다. 북한이 현재까지 내놓았거나, 내놓겠다고 약속한 것들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확보한 후에 더 요구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하노이회담에서 영변에 대한 교환조건에 대해 구체적 협상도 하기 전에 결렬된 것은 너무나도 아쉽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북한이 현재 난관에 봉착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착이 길어지면서 북한은 자신의 존재감은 없어지고, 한미와 달리 제재로 인해 자신만 고통받는다고 여긴다.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경제는 나빠졌는데, 코로나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최근의 도발은 하노이 결렬 이후 이어진 흐름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유는 다각도겠지만, 핵심은 남측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불신이다. 2018년 9월 평양에서의 환대와 영변 폐기를 포함한 통 큰 선제적 양보 의사를 보였음에도 하노이에서 큰 치욕을 당했다. 그것도 불만인 데다 이후에조차 한국은 미국을 설득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북한의 최고 존엄을 직접 건드리는 모욕적인 대북 전단살포가 기폭제가 되었다. 전단살포 금지는 남북의 합의사항임에도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파국은 아니라고 본다. 올해 초 북한 고위층 인사들의 연이은 대남비난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친서를 통해 문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재확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았고, 문 대통령의 실명도 거론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을 거론하지 않는 것도 전체 판을 뒤엎지 않겠다는 계산된 의사표시로 보인다. 북한 도발에 대한 추격 또는 즉각 반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야 한다면 단호하되 간단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일정 기간 냉각기 이후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재추진되어야 한다.
평화학의 대가 에라스무스의 말대로 “아무리 불리한 평화라도 가장 정의로운 전쟁보다는 낫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어려워졌어도 한반도 평화를 향한 노력을 결코 멈출 수 없다. 지난 2년간 화려한 이벤트는 있었지만, 결실이 없었다는 비판에 대해 물론 우리의 염원만큼 진전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적어도 2017년을 휘몰아쳤던 전쟁의 공포는 없었다. 군사합의로 말미암아 휴전선은 위협은커녕 긴장도 없어졌었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조셉 나이는 평화는 산소와 같아서 우리가 누릴 때는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우리는 최소한의 평화공존을 결코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