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지국·서울지국…언론교류도 기대한다
- [‘2018 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⑦ 탈북 언론인의 소망 - 글: 지성림 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
정책브리핑
2018-04-17
김대중 전 대통령이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도착한 2000년 6월 13일, 김일성종합대학 4학년 학생이었던 필자는 4·25문화회관 근처 대도로변에 서 있었다. 그날 김일성대학 학생과 교직원이 모두 김 전 대통령의 연도환영에 동원돼 영생탑 앞부터 서성구역 비파거리까지의 구간에 배치됐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께 탄 승용차가 필자의 앞을 지나갔고, 필자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불과 2∼3m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을 평양에서 육안으로 목격했던 필자는 중국과 몽골을 거쳐 서울에 온 지 1년 반 정도 지난 2007년 10월 2일에는 TV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가면서 대한민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갔다. 역사적인 그 순간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7년 전 평양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국에 와서 처음 몇 년간은 필자도 다른 탈북민들처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언론사와 대학원 등에서 남북문제와 국제정치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공부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정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현존하는 실체를 부정한다면 그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오히려 우리가 그 존재를 애써 외면하는 동안 문제는 점점 더 커진다.
우리가 과거 10년간 북한 정권을 외면하고 있을 때 북한은 끊임없이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도 성공했다. 과거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만 기대를 걸고 손을 놓고 있었던 동안 북핵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면 그를 자주 만나서 설득하고, 그가 변화를 선택했을 때 어떠한 이익이 차례질 수 있는지 지속해서 알려줘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자주 만나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현재 생각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민의 안위와 국익을 위해 현재 직면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지도자이지 ‘정의’의 잣대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종교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화를 회피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며,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라고 해도 그를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미중 정상회담이 없었다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가능했을까? 또 1989년 12월 냉전 종식을 선언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몰타 회담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 변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춰 봐도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해 4월 26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탈북청년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나선 탈북청년들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 등을 위해 필요하다면 북한의 김정은과 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김정은이 좋아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존재하는 북한 통치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탈북청년들이 꼭 1년 만에 열리게 될 남북 정상회담을 ‘예언’하면서 가졌던 바람은 북한의 변화였다. 탈북청년들이 누구보다도 북한의 변화와, 그 변화를 통해 북한 주민의 삶과 인권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 땅에 그들의 가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떠한 합의가 이뤄지든 그것이 남북한의 위정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두 번의 만남이 아니라 남북 정상 간의 정례적인 만남을 통해서 북한 지도자가 주민을 위한, 북한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언론사 교류에 대한 논의가 조금이라도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가 최악일 때에도 미국의 AP통신과 일본 교도통신 기자는 평양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인은 평양 소식을 외신을 통해서만 듣는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북한 당국의 의중을 파악하고, 우리 정부의 생각을 북한에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남북 언론사 교류라고 생각한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의 기자가 평양에 상주하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서울에 상주하는 그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