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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평화의 봄이 온다

- [‘2018 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⑨ 평화, 우리의 삶 바꿀 것- 글: 김귀옥 한성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정책브리핑

2018-04-20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고대 로마 귀족 베게티우스가 한 이 말은 너무도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전쟁과 폭력도 영원한 승리도, 영원한 지배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적대적 양자 관계에서의 무기 경쟁은 치킨게임과도 같아 상대가 죽거나 포기해야 끝나기 마련이다. 다자 관계에서의 무기 경쟁은 도미노게임처럼 어느 한 나라가 군비증강을 하면 인접국들도 줄이지 못한 채 증강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그 결과 20세기 두 차례에 걸친 대전이 벌어졌다.

그러한 두 차례 세계대전에 의한 피해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잔혹했다. 인명 피해만 보면, 민간인과 군인 6000여만 명의 죽음과 600만 명의 홀로코스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들 수 있다. 그 속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민이 흘린 수많은 희생도 있다. 전쟁을 통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행방불명되고 납치됐다. 그러한 납치사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부 일본, 오키나와의 여성 20만여 명의 일본군 ‘위안부’사건이 아니겠는가. 잘 알려졌듯 20만여 명 중 80% 가까운 여성이 한국 여성이었다.

그토록 잔혹한 양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야 평화의 본격적 논의가 시작됐다. 요한 갈퉁이 말하듯 평화의 수단에 의한 평화가 도출되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하면 평화로서 평화를 준비해야만 함을 깨닫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제창으로 출발했던 국제연합(UN)은 평화의 이상을 안고 출발했다. 세계 평화의 상징인 UN본부는 존 D. 록펠러 주니어가 850만 달러를 기부해 뉴욕 이스트 강변에 세워졌다.

유엔은 실질적인 평화적 역할에 대해서는 관점과 입장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엔이 수립된 이래로 작은 전쟁들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3차 세계대전은 막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엔이 작성한 세계인권선언은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시민권과 사회권 등을 서서히 공론화시키면서 인권 약소국의 인권을 신장한다거나 인권 탄압국을 세계적으로 비판해 탄압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유엔 수립 이후 최초의 지역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 3년간 군인(남북군인, 유엔군, 중국군 등)이 322만 명, 민간인이 250만 명 정도 사살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에게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끝난 것이 아니라, 정전협정 체결로 인해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65년간 남북의 적대적 대립과 긴장, 화해는 되풀이돼 오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의 분단은 정권이나 체제의 입장에서 보면 적대적인 상대 정권을 각인시키면서 자기 구성원들의 충성도를 집결시키고 체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분단은 무엇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분단과 준전시상태는 참극이자 비극을 가져왔다.

한반도 분단으로 인해 일대 피해를 받은 사람은 이산가족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청년 세대에게 있어서 생활방식은 1인 가구가 부쩍 늘어났지만, 그들에게도 가장 소중한 존재는 가족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에는 여전히 가족의 가치가 부정될 수 없다. 그런데 분단과 한국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부부, 부모, 자식과 형제자매들을 빼앗아 갔다.

한번 이산된 후 상봉은 커녕 생사마저 알 수 없게 돼 통한의 세월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의 수는 극히 일부에 해당된다. 그런데 그 수가 고령화로 인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등록된 13만 1531명 중 2018년 3월 말 현재 5만 7920명(2세대도 포함) 정도가 생존해 있다. 2016년 통일부가 실시했던 등록 이산가족 전수조사에 따르면 그들 중 76.3%가 당장 생사확인을 희망하고 있다. 대면상봉을 원하는 사람도 63.7%에 달한다.

이산가족의 통한을 치유하는 것은 개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피해를 국가가 책임을 지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목자가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수량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목자가 노력하는 모습을 99마리 양이 볼 때 그 목자를 신뢰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의 봄을 애타게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는 이산 1세대들을 위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평화 구현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산가족이 분단과 전쟁 적폐에 의해 피해 받은 대표적인 사례라면, 최근 분단과 적대적 세력들의 고래 싸움 속에서 새우등이 터진 대표적인 피해자들은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과 기술자들, 노동자들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따르면 2년간 공단 폐쇄로 입은 피해액은 무려 1조 5000억 원에 달한다. 한때 종업원 350여 명에 연 매출 100억에 달했던 한 입주기업이 이제 6명 직원에 연 매출 8억 원으로 미미해졌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지난 촛불집회에서도 눈물겨운 호소를 했다. 그 기업인들은 ‘개성공단이 평화의 땅이었고, 남북경제협력의 장이었으며 북한의 시장경제 학습의 공간’(아시아경제, 2018년 2월 10일자)이었다고 강조해왔다. 실로 개성공단에 다시 사람들이 넘쳐날 때 그곳은 경제적 상생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경제, 평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피해자는 한국의 청년들임을 대개 사람들은 주목해 오지 않았다. 20대 초의 대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라. 십중팔구는 꿈이 없다거나 군대 갔다 와서 진로를 설계하겠다고 말한다. 페이스북이 지금은 말썽을 일으키고 있으나, 한때 창업과 SNS의 열광을 일으켰던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든 것이 20살이었고, 10대부터 새로운 SNS의 길에 대한 열망을 품고 그 방면의 업적을 계속 쌓았던 것은 유명하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능력이 없어서만이 아니다. 초경쟁사회에서 10대 때는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꿈을 접어뒀고, 대학 진학 이후에도 대다수 남학생들은 군대 문제로 불안증을 겪고, 여학생들은 유리천장 경쟁에 대한 공포감에 놓여 진취적인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는 게 남의 일이 돼 있다. 2018년도 국방비 예산 43조 1000억 원의 1/4이라도 청년들의 일자리 확대와 보편적 복지 등에 돌릴 수 있다면 모든 한반도 사람들의 삶의 질이 바뀔 수 있다. 국방비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분단은 우리의 삶을 바꿨다. 분단되기 전 중국 동북3성지역은 한반도의 뒤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북3성지역에 벼농사를 가져다 준 사람들이 바로 한반도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분단 70여 년간 우리는 섬 아닌 섬에 살고 있다. 바다와 대륙을 잇는 반도민으로서의 장점을 잃어버린 채 섬사람이 돼왔다.

평화는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들어서면 우리들은 선조가 유라시아를 횡단했듯이 유라시아 횡단열차, 아시안 하이웨이를 타고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여행도 하며 유라시아 수많은 민족들과 다양한 교류를 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게 할 것이다.

정부가 한반도의 봄을 부르는 전령사라면 진정한 봄을 맞는 것은 모든 한반도 구성원이다. 평화의 봄 햇살에 한반도의 깊은 겨울을 녹여낼 수 있도록 평화를 건설하는 일을 미룰 수 없다. 평화만이 전쟁과 핵의 위협을 보습으로 만들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좋은 일자리와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확실한 길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는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유라시아를 잇는 화룡정점이다. 우리가 진짜 평화와 원하는가? 그렇다면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바라는 우리의 소원이자, 남북정상회담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