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길을 내고 그 길을 주민이 가야 한다
- [‘2018 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⑩ 화해와 평화의 미래로 - 글: 박현선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정책브리핑
2018-04-23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방문객’ 시의 한 구절처럼 남북정상의 만남은 남북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의 조우다.
11년만의 정상회담은 남북 최고지도자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역사의 만남이자 5100만 남한주민과 2500만 북한주민의 만남이다. 남북한의 과거와 현재는 ‘분단-전쟁-냉전-화해-갈등-평화’라는 일련의 순환과정을 거쳤고, 그 속에서 남북한 주민은 애증의 관계를 이어갔다.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이 어떤 성과를 내는가에 따라 남북한의 미래, 남북한 주민의 삶이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2018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화해와 평화의 미래로 바꿔야 한다. 남북한 주민이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과거)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현재) 평화와 공존을 지향(미래)할 수 있는 정상회담이 돼야 할 것이다. 남북한 정상이 길을 내고, 그 길을 남북한 주민이 가야 한다.
비핵화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안전과 평화
2018 남북정상회담의 주요의제인 비핵화, 평화체제, 남북관계 발전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안전과 평화다. 특히 비핵화 문제가 풀려야 평화체제의 구축이나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 비핵화에 집중하는 것이 최우선적 과제임은 분명하나, 비핵화의 최종 도달점은 국민들이 핵 위협과 전쟁의 불안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화로운 한반도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상회담 준비와 진행과정 그리고 이행 과정에서 철저히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지지하는 절차의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정상회담이 돼야 한다.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중앙과 지방정부, 보수와 진보, 청년과 장년층이 함께 참여하고 논의하는 구조 속에서 정상회담이 진행돼야 한다.
여성이 주체자가 되어 ‘평화의 패러다임’ 만들어야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평화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으로 힘의 논리가 아닌 대화와 협상, 중재와 상생의 여성주의 패러다임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상회담과 남북관계 개선에서 여성이 주체자로 적합한 이유다.
정상회담 준비위, 자문단, 실무회의 등에 여성이 주체자로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 2000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여성·평화·안보(WPS)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문 1325호(UNSCR 1325호)’를 채택하는데, 이는 분쟁상황에서 여성들의 안전한 삶을 보호하고 평화·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동등한 참여와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2014년 5월 23일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유엔 안보리결의 1325 이행을 위한 대한민국 국가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여성의 평화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정상회담에 여성들이 참여해야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남북여성이 정상회담 이행의 주체가 되는 ‘남북여성평화협약’을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측에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여성이 ‘여성평화협약’을 체결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모성보호 및 영유아보호를 위한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 지원 등을 협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2005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여성통일대회’에 남측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이 대회는 평양에서 남북장관급회담(9월 13~16일)이 열리고, 베이징에서 제4차 6자회담이 진행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긴박한 시기에 개최됐다. 남북 대표단은 공동결의문을 채택해 ‘여성들의 단합된 힘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나라의 평화와 민족의 안녕을 수호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대회에 참가한 북측 여성들은 대부분 조선민주여성동맹 소속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데 반해 남측 여성들은 당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부터 반미여성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념을 가진 여성들이 참가했지만, 여성 의제로 하나가 되어 남남갈등과 남북갈등을 풀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남북여성의 경험과 지혜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다시 모아야 할 때가 왔다.
우선 가능한 사업부터 시작해야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주요 의제일지라도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구체적 성과가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만월대 발굴과 같은 문화재 복원 사업, 북한 영유아를 위한 인도적 지원 사업 등이 이번 회담에서 합의돼 남북관계 복원의 상징적 의미로 제시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사업은 유엔 대북제재에서 자유로운 사업이기에 현 상황에서 추진 가능하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관련해 이미 북측이 2015년 이산가족 상봉 말미에 “상시면회도 생각해 보겠고, 우편을 교환하는 것도 생각해 볼 것”이라고 의사를 타진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전면적 생사확인과 상봉의 정례화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또한 2015년 중단된 만월대 발굴사업 재개 의사를 우리정부가 지난 3월에 이미 표명한 바 있으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업 재개가 합의된다면 역사의 복원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 변화의 전기가 되길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길 바란다. 북한을 30여 년간 연구한 학자로서 북한사람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남북한 체제는 다르지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자녀를 잘 키우겠다는 희망을 갖고 사는 보통사람이라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북한은 경제난, 한국은 IMF를 겪으면서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늘고 경제적 기여가 많아지면서 친정과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등 가족의 삶은 남북한이 비슷해졌다.
그 결과 남북한 모두 딸을 선호하게 된다. 북한에서 아들만 둘이면 ‘국제 미아’라고 한다. 이번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우리와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들, 남북한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한반도가 만들어지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