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1년을 되찾은 ‘판문점 선언’
- 글: 김준형 한동대학교 국제정치학과 교수
정책브리핑
2018-05-08
2018년 4월 27일, 11년 만에 성사된 3번째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하루라는 짧은 실무회담이자 북미회담의 예비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포함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북미 간 비핵화의 중요성으로 인해 한국의 역할이 축소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한국의 운전자론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향후 전개에 따라 한반도는 물론이고 평화의 문을 여는 세계사적 함의를 가질 수 있다. 판문점의 분계선 넘나들기, 도보다리 벤치회담, 화기애애한 환송연과 송별 등 역사에 남을 명장면들이 이목을 끌었지만 가장 중요한 성과는 역시 비핵화에 합의한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라는 정식명칭을 가진 판문점선언은 전문, 3개 조문, 13개항으로 구성돼 있다. 예상했던 비핵화, 한반도평화정책, 남북관계 발전 순이 아니라 남북관계발전을 위한 합의사항이 먼저고 군사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따라 나온다.
이는 길잡이를 넘어 당사자 중심성이 강조된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북핵문제가 블랙홀처럼 모든 다른 이슈들을 빨아들여버렸지만, 이후로는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평화정착을 통해 함께 비핵화를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제재문제로 인해 이번 회담에서는 빠질 것으로 예상됐던 경제협력부분도 10·4 합의를 이행한다는 표현으로 비핵화가 실현될 경우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했다.
1조와 3조의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2조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또한 큰 의미를 갖는다. 비무장지대의 진정한 비무장 지대화의 출발점으로 확성기 철폐와 전단 살포 중지, 그리고 5월중 장성급 군사회담 개최하기로 명시한 것은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해소돼야만 남북관계발전을 이어갈 수 있고,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해진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즉, 정전체제의 극복은 군사적 조치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미 정전체제의 종식은 시작된 셈이다.
항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종전선언은 남북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이후에 미국이나 중국과 뒤를 이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3조는 2조의 연장선이면서 남북대결구조와 전쟁위협의 근본적 제거함으로써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리고 3조 4항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라는 공동의 목표와 의지를 확인했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이번 회담의 성격과 북핵문제의 본질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며, 핵 폐기라는 표현이 없다는 비판은 이념의 프레임에 갇힌 난독의 결과다.
이제 공은 북미회담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과거와 달리 반대급부 요구 없이 선제적으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과 핵실험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풍계리실험장 폐쇄까지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합의에 고무됐으며, 북한과의 회담이 큰 성공을 거둘 것을 예고했다. 지난 4월초 폼페이오의 방북 시 김정은은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핵사찰을 수용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핵까지 폐기시키기 위한 대북보상책이 빅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부터 일관되게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는데,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은 그 결과인 동시에 출발이다. 기대 이상의 성공적 회담을 만들어냈지만 아직 평화를 완성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장애물과 훼방꾼들이 있을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두 정상이 공통적으로 잃어버린 11년을 말했지만 세상 어떤 일도 그냥 낭비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 11년의 상실이 있었기에 지금의 기쁨이 있고, 절박함이 있으며, 우리에게 목표달성을 위한 큰 동력이 된다. 1970년대 닉슨의 중국방문으로부터 시작된 데탕트는 20년 후 마침내 냉전붕괴로 이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살린다면 이번에는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한반도 냉전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