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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봄, 즐기기엔 할 일이 많다

- 글: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책브리핑

2018-05-17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5·22 한미정상회담, 6·12 북미정상회담 등 후속 시간표가 정해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한반도 상황의 분수령이 될 역사적인 정상회담들이 예정됨으로써 긴박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회담의 주도권확보를 위한 샅바싸움·수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방식과 관련 미국 내에서 여러 이견이 표출되고 있고, 급기야는 북한이 제동을 걸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을 돌연 연기했고,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담화발표를 통해 북미회담 개최의 재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그 속사정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지난 남북대화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북한이 특정한 이유를 들어 대화를 연기하거나 취소한 사례는 많이 있다. 명목상으로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지만 궁극적으로는 최고 존엄을 비롯한 북한 체제의 안위 문제와 관련이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은 체제 유지에 훼손을 가하는 ’근본 문제’라고 판단할 경우 여지없이 모든 대화의 문을 일거에 닫아 왔다.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빅딜을 계획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현 시점에서 북한은 대화중단 카드를 다시 꺼내어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 내에서도 읽혀진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두 번 방문하는 등 북미 간 물밑접촉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 정부나 조야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화파와 강경파 사이의 이견을 협상 전까지 계속 부각하면서 비핵화 방식과 수준에 대한 협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노련한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비교·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협상이란 모두가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 놓인 하나의 파이(pie)를 누가 많이 가져가느냐의 문제로 접근한다. 파이를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는 것은 협상의 기본이다. 결국 타협에 의해 공평하게 파이를 가져가기도 하지만 그러기까지는 수많은 예외성도 표출되는 것이 바로 협상이다.

주변국 또한 각자의 몫을 차지하기 위해 분주한 것을 보면 이번 파이가 지금까지 가장 큰 파이임에는 틀림없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은 유래 없이 40일 만에 북중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개최했다. 비핵화와 경협카드를 북한에 제시하면서 북한에 훈수를 뒀을 것이다. 일본은 재팬패싱을 불식시키고 납치자 문제 해결 등을 카드로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 역시 한반도 여건이 개선될 경우 경제협력 등의 문제를 놓칠 수 없다. 6·12 북미정상회담은 이러한 수싸움의 분수령이 될 중요한 협상의 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까지 무기한 연기한 것은 유감스럽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신경이 곤두선 북한이 남북관계를 포함해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갈등 사항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었어야 했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선언 3조 4항 비핵화와 관련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 하기로 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어떤 사안이든 우리 측을 신뢰하고 다양한 계기를 통해 진지하게 협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5·22 한미정상회담이 예견돼 있는 만큼, 북한의 이른바 ‘불만사항’ 들이 우리를 통해 미국에 전달되고, 그 가운데 우리의 중재노력이 배가되면 좋았을 것이다.
 
일단 북한이 남북대화를 무기한 연기한 만큼, 며칠 남지 않은 한미정상회담의 의제가 보다 명확해졌다. 북한의 이러한 협상 태도와 주도권 다툼에 대해 한미가 어떻게 다뤄나갈 것인지 치밀한 대응방안이 협의돼야 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결과와 비핵화 방식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대해 정상 차원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 북중정상회담의 결과 등에 대해서도 한미 간 분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정상간 의견조율을 최종적으로 끝마치는 것이 중요하다.

낙관은 경계하되 비관은 패배주의다.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했다 하더라도 대화를 재개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공식적인 대화창구가 아니더라도 비공식적으로나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소통을 해야 한다. 특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남북 정상간 논의하는 절차는 북미 정상회담 전 반드시 거칠 필요다 있다.

협상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협상장에서 뛰쳐나오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면서 정상국가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운명의 운전대를 쥐고 있다. 1단에서 5단으로 변속이 바로 되지는 않는다. 단계적인 변속을 가하되 모든 당사자들이 같은 차에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의 봄햇살은 찬란히 다가왔지만 봄을 마냥 즐기기에는 너무도 할 일이 많다. 한미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