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남북정상회담과 신뢰할 수 있는 촉진자
- 글: 봉영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정책브리핑
2018-06-01
지난 5월 16일 새벽 3시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고위급회담 중지’를 공식화한 후 한반도 안보정세는 유례없이 격동적인 나날을 보냈다. 특히 5월 22일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종료 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의 취소를 전격 선언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5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의를 가진 후 미국과 북한이 다시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듯했던 북핵위기 해결과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체제건설의 비전은 다시 희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 2주 동안의 이러한 외교 롤러코스터가 보여준 현상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난 25년간 북한정권이 자주 사용해온 소위 ‘벼랑 끝 전술’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입을 통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이해한다’는 탄력적인 입장을 보였던 북한 당국은 돌연 남북고위급 회담 취소를 통보하면서 “남조선당국과 미국은 력사적인 4·27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 무례무도한 도발로 대답해나섰다”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북한 당국은 이어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개인담화 형식을 빌어 “트럼프행정부가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든다면 우리는 (…) 다가오는 조미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북한의 강경입장 선회에 대해 한미정상은 절제됐으나 확실한 경고의 메시지와 함께,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들어설 때 양국 정부가 제공할 커다란 혜택을 다시금 강조했다. 5월 22일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미대통령은 ‘우리가 원하는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을 안 할 것’이라는 강경한 태도를 확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정은 체제와 안전은 미국이 처음부터 보장하겠다’라고 이야기해왔음을 확인하고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모두 북한을 도와서 북한을 아주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아주 많은 지원을 지금 약속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곧바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횡설수설’ ‘무지몽매’ ‘아둔한 얼뜨기’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조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하겠다는 최선희 북한 외교성 부상의 담화문이 발표되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개인서한 형식을 빌려 북미정상회담의 취소를 발표했다. 특이한 것은 미국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 결정 후 북한은 전례없이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며 서둘러 진화작업에 나섰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 속에서 ‘벼랑 끝 전술’은 비단 북한만이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미 행정부도 구사하고 있으며, 북핵문제의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미국의 입장에 북한이 밀리고 있는 점이 확실히 나타났다. 첫째,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해결의지가 그 어느 역대 정권보다 강해졌다. 이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아시아 지역의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지역 안보이슈나 전 세계 핵 비확산 노력의 차원에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국가안보이슈로 정의됐다.
둘째, 유엔안보리제재 등의 압박 하에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이 극도로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은 표면적으로는 비핵화에 동의할 경우 제공되는 경제혜택에 무관심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계관 부상은 개인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 한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최근 노동신문은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새로운 당 조직 사업과 인민역량 고양을 전면에 주장하고 있다. 결국 북한이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 검증 가능한 북한체제보장은 비단 조약 형식을 통한 적대시 정책 철회 확인과 국교 정상화 등 외교안보수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성공한 대한민국의 모델을 북한이 추구해 인민의 생활 수준을 신속하고 가시적으로 향상하는데 달려 있음을 방증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략적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북한과 미국 간에서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남북 정상 간의 허심탄회한 정상회담이 그 증거다. 이제 공은 북한 정부 편으로 넘어갔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기존의 수사를 되풀이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어달라는 전략보다는 실질적이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행동이 요구되는 비등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다음 날인 5월 28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묻는 말에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가 합의할 일이라며 즉답을 피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은 ‘북미 간 협의할 문제’라며 “제가 앞질러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확인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다만 비핵화에 대해 뜻이 같다고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로드맵은 또 양국 간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에서 지속할 수 있는 평화체제의 건설은 미북정상회담의 결과에 달린 것이다.
북한은 이전에 “트럼프행정부가 우리의 핵이 아직 개발단계에 있을 때 이전 행정부들이 써먹던 케케묵은 대조선 정책안을 그대로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은 유치한 희극이 아닐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북미정상회담을 목전에 앞둔 지금이야말로 북한 또한 문재인 정부가 강조한 역지사지의 지혜를 발휘해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결정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