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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북미정상회담을 구한 신뢰외교

- 글: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

위클리공감

2018-06-03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시대를 천명했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양측 간 기싸움과 줄다리기가 치열해졌다. 결국 북한이 5월 16일 예정된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하며 남북관계는 난관에 부딪혔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이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면 북미정상회담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2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의 일괄 타결 해결을 주장했다. 다만 속전속결 방식이라면 북한이 바라는 단계적 해결법도 일부 도입할 것이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만 실현하면 체제 안전도 보장하겠다고 했다. 북한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차 방북 예정인 한국 언론인 명단 접수를 거절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들의 입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정부와 상의 없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알렸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대미 비판 성명에 분격한 탓이었다. 북미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남북관계는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한미동맹 신뢰도 의심받으며 한반도 정세가 요동쳤다. 다행히 김계관 제1부상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정중한 담화를 발표했다.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호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신속한 성의 표시를 수용하고 6·12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시행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남·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하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을 잘 알고 있는 김 위원장은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 직후 문 대통령과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고 제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즉각 수용했다. 이로써 단 하루 만인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전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면 북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경제협력을 실시하는 데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북미정상회담 의제에 관해 사전 실무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 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또 판문점 선언의 조속한 이행을 재확인하며 6월 1일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군사 당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에도 뜻을 모았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5월 27일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며 “북미 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갖고 종전선언을 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표명했다.

북한의 대남 몽니와 미국과의 줄다리기,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벼랑 끝 전술은 남북, 북미, 한미 관계를 동시에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간 문재인 대통령이 신중하고 포용력 있는 외교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뢰를 얻은 것이 위기 시에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신속히 수용해 남북 정상 간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어려움에 처한 남북관계를 재가동시켰다. 미국과 북한 지도자의 사기를 북돋으면서 북미 지도자의 이견 차를 해소해 북미정상회담이 재추진될 수 있는 동력을 살렸다.

북미 양측은 종전보다 진지한 자세로 다양한 협상을 진행했다. 판문점에서 최선희 부상과 북핵 협상 베테랑인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가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 의제에 관한 협상을 가졌다. 싱가포르에서는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경호, 의전, 일정을 조정했다. 이제까지 북미정상회담을 지휘해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뉴욕을 방문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최종 담판을 마무리 지었다.

남북 정상은 더욱 친숙한 신뢰관계를 형성했다. 정부는 이 여세를 몰아 남북고위급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 물론 북미정상회담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남북관계가 대립 상황으로 후퇴하는 것을 저지하고, 남북 간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해야 한다. 인도주의 지원과 체육, 문화, 학술, 종교, 환경 등의 분야에서 지속적인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하면 이를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해제로 이어지게 하고, 개성공단을 재가동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해 금강산 관광사업도 재개해야 한다. 제재가 해제되면 철도·도로 연결과 개보수 등 10·4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경협사업을 추진하고 나아가 전력 등 북한 인프라 구축 사업도 진행해야 한다.

북미, 최소공배수보다 최대공약수부터 이뤄야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해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는 미국과 북한에 다음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북미 양측이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양측 요구사항의 최소공배수보다 최대공약수만 합의해 성실한 이행으로 신뢰부터 조성하는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체제 보장이 이뤄지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재는 양측의 신뢰가 부족하므로 일정 시점까지 적당한 보상을 제공하면서 북한의 현재·미래 핵을 신고→동결→사찰→폐기→사찰 과정을 거쳐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 이후 북한에 보상과 체제 보장을 제공하면서 과거 핵을 폐기하거나 국외로 이전하는 2단계 접근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북한이 핵 폐기 완료 시점을 명기하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받아들이면 합의 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하도록 동기 유발 보상을 제공하는 게 지혜롭다.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고 상대방 수도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며, 미국은 북미 정상의 합의 사항을 상원에 조약 형태로 인준도 받아야 한다. 만약 제재를 완화한 뒤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탄력적으로 다시 부과하는 스냅백(snap-back)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정부는 북미 합의를 우리가 작성한다는 각오로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외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북미 회담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북핵과 한반도 안보의 주요 당사자다. 천재일우의 이번 기회를 현명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온 국민과 함께 여야 정치인들도 초당적으로 단합해 진정으로 축원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