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남북·북미관계 병행발전 추동력 확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책브리핑
2018-06-14
필자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서 6·15 공동선언의 탄생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다. 6·15 공동선언은 적대적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화해협력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열어나가자는 두 정상의 약속이었다. 공동선언 탄생의 배경에는 북한 내부의 어려운 상황도 작용됐다. 경제난과 체제위기에 처한 북한은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기점으로 대화의 장에 나오게 된다. 북한의 도발불용·흡수불용, 화해협력이 베를린 선언의 핵심골자였다. 상호존중과 화해협력의 바탕 위에서 남북 간 신뢰구축의 첫걸음을 떼게 됐다.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당국 간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적절한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명시했다. 이후 남북관계의 부침은 있었지만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회담과 개성공단사업·금강산관광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을 전개해 나갔다. 15일이면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이 체결된 지 18주년이 되는 날이다. 18년 전 그날을 회상하며 엊그제 6·12 북미정상회담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6·12 북미정상회담 역시 70년 넘게 서로를 적대시해왔던 두 나라와의 역사적 만남이다. 우리는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평양 정상회담, 올해 판문점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남북 간 신뢰구축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북미 간에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특히 지난해 연말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북미 정상 간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과 남북한이 함께 거둔 위대한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 또한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대단한 진전(Great progress)이 있었고, 북미 정상 간의 전례 없는 만남은 진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만족감을 표명했다. 북한 언론매체들도 ‘싱가포르에 마련된 회담장은 오랜 세월에 걸친 조미대결을 결산하는 자리’라고 하는 등 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것’은 유럽의 역사와 독일 통일이 증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진영 간 냉전과 열전의 대결적 역사는 1980년대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간 역사적인 미소 정상회담을 토대로 급반전됐다. 이후 양 진영은 몇 년에 걸쳐 대결적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고 이는 독일 통일 및 유럽 통합으로 귀결됐다. 이번 북미정상회담도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적인 사건’임은 부정할 수 없다.
둘째, 이번 북미 간 공동성명의 문안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그러나 앞서 말한바 대로 북미 간 신뢰관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북미관계 정상화의 기초를 마련한 것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돼야 한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문안을 봐도 그렇듯이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최초의 시도에서부터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합의를 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번 공동성명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등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비핵화와 관련, 양 정상간 많은 논의의 내용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한 폼페이오 라인의 후속협상을 예견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양 정상간 논의 내용을 기초로 비핵화 이행 수순 등에 대한 구체적 문제들을 계속 협의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북미뿐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졌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관계와 북일·북중관계 등 주변국간의 관계 개선 등을 촉발시켰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북미 양 정상의 용기와 결단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올해 초부터 한반도의 평화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고 공존과 번영의 새 시대가 열릴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라고 언급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협상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세부 계획들이 마련될 것이다. 이와 병행해 우리는 판문점 선언에 기초해 남북관계 발전의 로드맵을 본격 가동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제2차 북핵위기에 늘 발목이 붙잡혔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4·27 판문점 선언은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따라 병행 발전의 추동력을 확보했다. 이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차량은 2단기어에서 3단기어로 변속하게 된다. 3단에서 힘을 받고 4단·5단의 탄탄대로로 갈 수 있도록 우리의 역할은 지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