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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향한 긴 여정의 첫 발걸음

고유환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정책브리핑

2018-06-22



고유환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림으로써 70년 동안 유지해 왔던 북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기 위한 첫발걸음을 내디뎠다.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북미정상이 평화를 선택하고 북미공동성명(센토사성명)을 채택함으로써 평화의 새 시대를 열었다.

동서냉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개막을 알렸던 1989년 ‘몰타선언’(몰타미소정상회담)과 비견되는 북미공동성명 채택으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도 본격화할 것이다. 북미공동성명에서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실현,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등 4개항의 주요 합의를 담았다.

북미공동성명의 채택은 ‘문재인-김정은-트럼프 비핵평화프로세스’의 큰 그림을 완성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북미공동성명의 핵심은 북미 적대관계 청산과 상호신뢰구축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달성하는 것이다. 북한의 요구사항(체제안전 보장)과 미국의 우려사항(완전한 비핵화)을 교환하는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원칙과 방향을 합의했으니 추가 실무협상을 통해서 단계별로 이행로드맵을 만들고 실천하면 될 것이다.

북미공동성명에서 미국이 체제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안보-안보교환을 위한 ‘말 대 말’의 공약에 합의했다. ‘행동 대 행동’을 위한 후속협상을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지속하기로 함으로써 ‘9·19 공동성명’의 동시행동원칙에 입각한 북핵해법을 복원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와 이행로드맵, 체제안전보장과 관련한 ‘종전선언’ 등 구체적 내용이 빠졌다고 일부에서 실망하거나 아쉬움을 보일 수 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북핵해결의 원칙과 방향에 합의하고 후속회담에서 단계별·동시적 이행 조치를 구체화하고 이행해나가기로 합의함으로써 출발은 나쁘지 않다.

북미공동성명은 ‘평화를 향한 긴 여정에서의 첫발걸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과정(process)’을 강조하면서 여러 차례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시작에 불과하다. 1994년 제네바합의, 2000년 공동콤뮤니케, 2012년 2·29합의 등 북미 간에 여러 합의가 있었지만 북미정상간 합의를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보다는 합의 구속력이 클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아왔다. 북한이 핵을 버릴 수 있도록 하려면 핵개발의 동기를 없애야 한다. 결국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외부세계와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빠른 북핵해결 방법이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향후 실무협상에서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에 관한 안보-안보 교환의 이행로드맵을 만들게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초기 조치와 미국의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종전에 관한 약속을 교환하는 것으로부터 비핵평화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해결에 북한이 적극성을 보인다면 미국도 체제안전보장의 첫 조치로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정치적 약속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하지 않았기에 조만간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서 종전선언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북미 적대관계 해소는 북한이 정책을 전환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만능의 보검’이다. 그동안 핵무기가 북한 체제유지의 만능의 보검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북미 적대관계 해소가 북한 비핵화와 국제사회 편입, 그리고 개혁개방을 추동할 수 있는 만능의 보검이 될 것이다.

북미 적대관계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논리(사상이론)와 구조(수령체제, 분단체제, 냉전체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해소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북한이 사상이론적 조정을 해야 정책을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 적대관계 해소는 분단체제, 냉전체제 등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에 근거한 새로운 논리와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 의미가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중단 약속과 함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실행하고,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를 약속한데 대한 화답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군사연습 중단을 선언했다. 이와 같이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체제보장 이행 로드맵을 합의하기 전에 상호신뢰를 쌓기 위한 선행조치를 취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선 행동조치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속도전’을 펴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한 이상 속도를 늦출 이유가 없다. 빠른 비핵화를 통해서 제재를 해제하고 4차 산업혁명을 수용한 지식경제시대로 ‘단번도약’하는 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목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