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종전선언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위클리공감
2018-08-19
지난 7월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미 후속회담 이후 조기 종전선언과 선(先)비핵화 조치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북미의 대치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 간 모습을 두고 상호 불신의 퇴행성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나마 기대를 모았던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에선 북미, 남북 양자 대화도 없이 “일방적인 선행동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연설과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제재 유지하겠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목소리만 도드라졌다.
대북 제재 준수를 연일 강조하며 한국과 북한을 흔들고 있는 미국과, 미국 눈치만 보며 제재만 운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북한 사이에 끼여 한국의 입장이 난처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사이 미국 내 비핵화 회의론이 더욱 거세지면서 한국에서도 비관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가을 남북정상회담 추진 카드가 나왔다. 북미 교착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회담으로 해석되고 있다. 과연 북미 교착국면의 해결 실마리는 없는 것일까? 연내 종전선언은 이뤄질 수 있을까? 북한은 핵 리스트를 조속히 제출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등판’은 성공할 수 있을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정국의 시계 앞에 의문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북미 교착국면 돌파의 긍정적 힌트들
그러나 비관과 회의의 프레임을 잠시 내려놓으면, 긍정의 힌트들 역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리용호 외무상은 ARF 연설 곳곳에서 북미 정상 ‘합의’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지금의 교착국면 역시 미국 국내 정치 탓으로 돌렸다. 7월 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 이후 북한의 메시지 프레임 중 일관된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관료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점이다. 모든 잘못과 이행의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미국 관료들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를 보여 전체 판을 깨지 않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국면을 조속히 정리할 것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된 프레임이다. 미국 역시 북한의 조속한 비핵화 조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대화가 갖는 신뢰에 대해서는 계속 환기하고 있다.
ARF에서 성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는 각국 장관과 언론들이 보란 듯이 리용호 외무상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는 연출(?)을 했다. 얼마 전 김정은 위원장이 미군 유해 송환과 함께 보낸 친서(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을 ‘nice letter’라고 칭함)에 대한 답장이다. ‘친서’는 이제 북미 정상의 유대를 연출하는 우화적 ‘매개물’이 된 듯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ARF 갈라 만찬 자리에서 리용호 외무상과 짧지만 ‘스탠딩 간이 회담’을 가졌다. 폼페이오 장관 역시 리용호 외무상에게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환하게 인사 교환 장면을 연출했다. 의장성명은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 표현을 사용했다.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합의를 존중하는 배려의 흔적이 역력하다. 강 장관은 ARF를 결산하며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 및 중국과 상당한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드러난 모습 이외에도 남·북·미·중 사이의 극비 만남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7월 초 부산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극비 회담이 이뤄졌고, 7월 중하순에는 강경화-폼페이오, 정의용-존 볼턴 미국 국가안전보좌관, 서훈-폼페이오 등 한미 외교안보라인의 극비 회담이 촘촘하게 이뤄졌다. 한편 양제츠-정의용 부산 비밀 회담에도 수행했던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이후 북한으로 가 리용호 외무상을 만났고 베이징으로 돌아가자마자 마크 램버트 미국 국부무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을 극비리에 만났다. 그리고 북미 사이에는 비공개 실무 협상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장면들과 움직임에서 우리는 대치와 교착의 ‘비관적 긴장’보다는 극적 타협과 절충을 앞둔 ‘낙관적 긴장’의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북미 양측이 연일 비핵화, 종전선언, 대북제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제한된 ‘타협의 시간’ 속에서 발휘하는 서로에 대한 전술적 ‘압박’으로 볼 수 있다. 위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조각을 맞춰보면, 7월 7일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미 후속회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종전선언’을 처음 언급한 이후, 남·북·미·중 사이에 물밑 대화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물밑 진전 과정에서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도 한층 구체화되었고, 미국의 제재 준수 촉구도 강도를 더했다. 시간 제약은 북미 모두를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협상력을 높이고 최대치를 끌어내겠다는 점에서 양측은 동일하다.
8월은 북미 모두에게 결정적인 ‘정치적 시간’이 될 것이다. 연초부터 극적인 정세 전환을 꾀해온 북한에게 9월 9일 정권수립 70주년과 10월 10일 당 창건일은 그 결실을 보여줘야 하는 정치적 시즌이다.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변심 가능성 역시 북한을 조급하게 하는 불확실성이다. 그 전에 뭐든 담보물을 챙기지 않는다면 불안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계속 침식할 것이다.
종전선언은 그나마 불안은 잠재우며 대내적 성과와 비핵화의 명분으로 내세울 소재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중간선거의 판세가 드러나는 9월까지 북미 합의 이행 성과를 가시화해야만 한다. 각종 스캔들과 특검의 칼날이 겨누고 있는 상황을 돌파할 무기로 북한의 ‘핵 신고 리스트’ 확보가 다급하다. 만약 중간선거에서 패해 미 하원이 민주당에 장악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 역시 위태로운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종전선언 조기 추진이 불발될 경우, 한미 사이에 공조 균열도 미국의 우려가 아닐 수 없다. 양측 모두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면 저마다 국내적으로 치러야 하는 정치 이벤트에 에너지를 쏟아야만 한다. 서로에게 집중할 시간적 여유는 결국 ‘8월’이다.
북미 모두 국면 돌파용 결정적 ‘무기’를 확보해야만 하는 8월은 서로에게 소중할 수밖에 없다. 한국 역시 북미 교착의 지속과 남북 합의 이행의 ‘정체’는 그간 유지해온 동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극적인 타협점과 절충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교환 구도와 ‘시퀀스(순서)’의 조율이 이뤄질 것이다.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과감한 주도성을 강조한 까닭
그 막바지 조율은 결국 8월 말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 방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후 남북정상회담의 성격과 합의 수준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북미의 향후 합의 이행과 신뢰 조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단 미국은 모든 핵 신고 리스트를 ‘원샷’에 확보하길 바라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미국은 최근 그것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은 핵 신고 리스트를 몇 개로 쪼개 단계별로 주고받길 원할 것이다. 결국 절충선은 전체 핵 리스트 중 일부를 종전선언과 교환하는 것이다. 큰 틀에서 미래 핵은 북한의 자발적인 폐기와 느슨한 검증으로 갈 것이다.
북부 핵실험장 폐기와 동창리 발사장·실험장 폐기와 같은 자발적 미래 핵능력 제거가 북한의 자발적 조치들로 한다는 것에는 이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를 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핵시설 신고와 폐기는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와 교환되는 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무기급 핵탄두와 핵물질은 이후 평화협정과 국교수립과 교환하는 구도이다.
종전선언과 교환될 현재의 핵시설 리스트는 2005년 9·19 및 2007년 10·3 합의를 통해 대상화되었던 것과 그 이후 추가된 핵시설을 포괄하는 사실상 방대한 리스트다. 그리고 여기에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과 실험장 폐기 등 자발적 미래핵 폐기에 대한 느슨한 검증(참관) 정도가 추가될 수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미국의 비핵화 성과는 큰 성공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종전선언의 프로젝트는 8월 북미의 정치적 시간 속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양 정상이 세계와 나눈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하길 주문했다. 그리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및 대표부 개설→철도·도로 현대화 연내 착공→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통일경제특구→동아시아철도공동체→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계 등으로 이어지는 시간표와 비전도 제시했다. 남북관계의 과감한 주도성을 강조함으로써 북미에게 강한 이행의 압박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