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평양공동선언’ 되짚어보며
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2018-10-10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벌써 네 번째 평양에 다녀왔다. 지난 5월에 2차 방북을 하면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의 의제와 장소, 일정을 조율해 낸 반면 7월의 3차 방북은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던 일을 돌이켜 본다면 일단 이번 4차 방북은 이른바 ‘빅딜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폼페이오 장관 자신도 그렇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번 방북 행보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10월 7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은 9·19 평양공동선언 이전에 계획이 돼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평양을 찾아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9·19 평양공동선언을 선포함으로써 대화의 동력을 되살려 냈고 폼페이오 장관은 다시 평양을 찾았다. 아직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는지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지만 적어도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계기로 끊어졌던 북미대화의 흐름이 되살아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2018년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날짜가 9월 19일이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2005년이 떠올랐다. 그 때 6자회담 당사국이 베이징에 모여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이후 어느 덧 13년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에 회한이 깊었다. 그동안 내가 사는 이 땅과 주변 상황은 어떻게 변했는지 그 점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는 생각에 새삼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9·19 베이징공동성명을 채택하던 2005년 당시와 달리 2018년 가을에 9·19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는 지금의 상황이 결코 우리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2005년 당시 북한당국의 핵 능력은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다. 누구나 의혹은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확신은 하지 않았던 것이 당시 북한의 핵 능력 수준이었다. 2018년 오늘날은 상황이 완연하게 다르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북한 핵 문제를 쉽게 해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아무도 북한당국의 핵 능력 수준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 날짜가 언제일지 아직 분명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에 이어 제2차 북미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전망이 나오는 중이다.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북한의 핵문제를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으며 검증 가능한 상태로 해결할 수 있는, 반드시 해결해 내야 하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70% 정도는 남북정상회담을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매우 잘했다는 비율이 52.5%에 이르고 잘한 편이라는 의견도 19.1% 수준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북정상회담을 잘 했다고 평가하는 비율이 곧 북한의 행보를 신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국갤럽이 남북정상회담 기간인 9월 18~20일까지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 북한이 앞으로 남북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잘 지킬 것으로 본 비율은 49% 정도에 머무른 반면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3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수치는 곧 우리 국민이 지금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시사해 주는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북한을 향해 불안한 눈길을 완전히 거두어도 될까? 이제 우리는 정말 이 땅의 평화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고 확신을 가져도 될까?
돌이켜 보면 우리는 작년 한 해 동안 내내 불안한 눈길로 북한당국이 제5차와 제6차 핵실험을 몇 개월 간격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18년 들어 새해 벽두부터 북한당국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고자 평창에 오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을 때에도 그 불안했던 눈길을 완전히 거둬들이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으로 보였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찾아온 9월 19일에 나온 평양공동선언은 충분히 불씨를 일으켜 새로운 희망의 흐름을 가꾸어 볼 가치는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앞날을 확신할 수 없지만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