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2019-04-26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감동적인 장면들을 눈으로 보았다. 4·.27 정상회담은 지난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과는 달리 북측 제의로 열린 것인데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우리 측을 방문한 첫 사례였다.
이 자리에서 남북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하 판문점선언)’에 합의했다. 판문점선언은 전문과 3조 13항으로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완화, 북한의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주요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이 글에서는 동 선언 1년에 즈음해 그 의미와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소통 및 교류의 전기 마련
판문점선언의 첫 번째 의미는 남북 간 소통과 교류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물론,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남북 정상 간의 만남이 한 해 동안 세 번이나 이뤄진 것이다.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회담에 이어 5월 26일에는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짧은 시간 만남이 있었다.
이 회담 또한 북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5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2일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의 급작스런 연기 발표로 동 회담이 무산위기에 봉착하자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9월에는 판문점선언 합의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9·19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간 회담을 이끌어내고 교착국면 마다 이를 추동하는 역할을 했다. 이로써 남북정상회담이 정례화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남북당국 간 대화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어졌다. 고위급회담은 물론, 군사회담과 체육회담, 철도 및 도로협력 분과회담, 산림협력분과회담 등의 회담이 열렸다. 특히 9월에는 개성공단에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설됐다. 남북 당국 간 상시소통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다양한 교류도 이어졌다. 통일농구, 코리아오픈 탁구 단일팀, 유소년축구대회, 아시안게임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 등 각종 체육행사가 이어졌다.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이뤄졌다. 이산가족면회소의 개보수 작업이나 화상상봉을 위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철도·도로현대화를 위한 현장조사와 착공식 또한 있었다. 이렇듯 남북관계 발전은 상호 신뢰구축을 통해 가능한 일이고, 신뢰구축의 출발은 소통과 교류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군사적 긴장완화에 기여
판문점선언의 두 번째 의미는 군사적 긴장완화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동 선언의 구체적 실천방안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담겨져 있다. 동 군사합의는 과거와는 달리 평양정상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양 정상의 강력한 이행의지가 실린 문서다.
동 합의에 따라 상호 적대행위가 중지되고, 군사적 충돌 가능성 차단을 위한 실질 조치들이 이뤄졌다. 특히,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를 목표로 GP 일부의 시범적 철수가 검증절차를 거쳐 완료됐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또한 상호 검증 하에 이뤄졌다.
앞으로 모든 GP의 철수와 JSA의 공동경비, 민간인 자유왕래는 합의대로 추진돼야 한다. 비무장지대 내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전술도로 연결, 한강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현지조사 등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판문점선언 이후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나 충돌은 야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남북관계 걸림돌 제거해야
이러한 의미들도 있지만 우리 앞에 놓여 진 과제들 또한 적지 않다. 2월말 하노이회담 합의 불발 이후 판문점선언 이행은 지지부진하다. 북한 측은 유해공동발굴단 명단 통보도 하지 않고, 우리 측의 대화 제의에도 묵묵부답이다. 북핵문제라는 중대한 걸림돌에 봉착된 형국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를 우리 측의 소극적 자세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판문점선언 이행을 지연시키고 있다. 북핵문제 진전 없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물론, 통일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은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완전한 비핵화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