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웹사이트는 제19대 대통령 임기 종료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이관받아 서비스하는 대통령기록물입니다. 자료의 열람만 가능하며 수정 · 추가 · 삭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하여 개인의 정보를 보호받기 원하시는 분은 관련 내용(요청자, 요청내용, 연락처, 글위치)을 대통령 웹기록물 담당자(044-211-2253)에게 요청해 주시면 신속히 검토하여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와대 서남쪽에 자리 잡은 '칠궁(七宮)'은 조선 시대에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이곳은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육상궁(毓祥宮)을 비롯,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 대빈궁( 大嬪宮·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 연호궁(延祜宮·영조의 후궁 정빈 이 씨),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 엄씨) 등 7개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울러 칠궁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 시대 묘사제도(廟祠制度)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68년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왔으나 2001년 11월 24일부터 다시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칠궁' 관람은 문화재 보존과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청와대 관람과 연계하여 실시되고 있습니다.
육상궁(毓祥宮), 사적 제149호('66,3.22 지정)
지정면적25,791㎡(7,815평)
건물 현황육상궁 등 묘궁 5개 동을 포함 총 24동 278평
칠궁은 조선 시대 제왕 중 정비의 출생이 아닌 왕이 그의 사친을 모신 사당이다. 이곳은 원래 숙종의 후궁이고,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우가 있어 숙빈묘라 하였는데, 영조 20년(1744) 육상묘로 개칭하였다가 동 29년(1753)에 육상궁이라 하였다.
고종 19년(1882)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동 20년 6월에 중건하였다.
그 후 융희 2년(1908) 서울 주변에 흩어져 있던 여러 사친묘를 합사함에 따라 영조의 후궁이며 진종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연호궁, 선조의 후궁이며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의 저경궁,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대빈궁, 영조의 후궁이며 장조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선희궁, 정조의 후 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경우궁을 육상궁 분내에 합사함으로써 육궁이라 했는데, 1929년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의 덕안궁을 이곳에 이안하면서 칠궁이라 하였다.
정문을 들어서면 남북축에 맞춘 2채의 재실이 있고, 그 뒤로는 동에서부터 남향한 육상궁, 연호궁, 덕안궁, 경우궁, 선희궁, 대 빈궁, 저경궁이 있는데 연호궁과 덕안궁 사이에 있는 냉천과 냉천정, 그리고 주변의 뜰은 전통적인 한국 정원의 일면을 보여주며 주위 담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